“도대체 또 뭐가 문젠데요?”
참다못해 물었지만, 리바이는 내가 큰소리를 내거나 말거나 들은 척도 안 하고 박스를 뒤지고 있었다. ‘앉은자리에 풀도 안 날 놈’이라는 말을 똑똑히 듣고 난 직후였다. 처음 듣는 말이어서 뜻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본능적으로 그것이 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리바이는 아침에 눈을 딱 뜨자마자 뭐라고 궁시렁대면서 돌아다녔는데 그동안 나와는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간밤에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불러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내가 뭔가 잘못한 모양이었다.
“밤까지 기분 좋았잖아요. 눈 뜨자마자 왜 이래요? 말을 해야 알죠!”
“......아줘도 못 먹는 놈...”
“뭐라구요? 웅얼거리지 말고 똑바로 좀 말해요!”
“짜증나니까 명령하지 말라고 했다.”
이번엔 분명히 말하며, 리바이는 박스에서 팩에 든 달걀과 버터를 꺼냈다.
“아까 앉은자리에 풀도 안 날 놈이라고 하는 거 들었어요. 그거 나한테 하는 소리 맞죠?”
“쓸데없이 귀만 더럽게 밝아서...”
“그건 잘 들리는데요.”
“들으라고 한 소리야.”
“앉은자리에 풀도 안 날 놈이 무슨 뜻인데요?”
“손은 뒀다 뭐 하냐? 검색해봐. 하긴 네 손은 먹는 것밖에 못 하지...”
“여기 인터넷 안 터져요.”
그때야 나는 거의 하루 동안 방치해둔 내 핸드폰이 생각났다. 그리고,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어제는 정신도 없었고 리바이와 얘기하느라 집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핸드폰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이 리바이는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는 곧 박스를 다 뒤집어서 내용물을 바닥에 와르르 쏟아버렸다.
“망할 놈의 프라이팬이 대체 어딜 갔어?!”
숲의 아침공기는 신선했고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그 한 마디에는 그만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나는 얼른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애꿎은 텐트 바닥을 들쑤셔봤지만 핸드폰은 나오질 않았다. 리바이가 신경질적으로 물건을 뒤적이는 소리가 점차로 요란해지자 약간 떨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욕먹기 전에 미리 침낭을 접어두었다. 그런데 침낭주머니가 커다란 침낭을 쑤셔 넣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것이다. 텐트는 쳐 보기만 했지 도로 정돈해본 기억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나는 리바이를 호출했다(“리바이! 침낭이 주머니에 안 들어가는데요!” “그냥 쑤셔 넣어!” “넣는다고 들어가는 사이즈가 아니에요!”). 리바이가 이를 갈며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와서, 나는 텐트 한구석으로 얼른 물러났다. 리바이는 사납게 텐트를 젖히고 들어와 침낭을 수납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과연 리바이는 달랐다. 침낭에 공기는 한 줌도 남지 않도록 돌돌 만 다음에 무릎으로 눌러서 더 짜부라뜨린 다음 주머니에 수월하게 쑤셔 넣은 것이다. 그는 주머니의 아가리를 조인 다음 나에게 툭 던졌다.
“넣으면 잘만 들어가는구만 해 보지도 않고 안 들어간다고 하냐?”
“주머니가 너무 좁아 보였으니까요.”
“그래, 주머니가 너무 가련해 보였구나. 그래서 마음이 약해졌던 거구나.”
“지금 비꼬는 거예요?”
그리고 리바이는 대답하지 않고 휑하니 나가버리는 것이다. 도대체 왜 또 저러는지 이유나 알면 좋겠다. 돌아가는 길 내내 나는 그에게 이유를 캐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저질렀으리라고 추정되는 잘못의 목록을 줄줄이 나열한다든지...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리바이가 했던 것처럼 나머지 침낭을 정리했다.
바깥에서 좋은 냄새가 나서 얼른 바깥으로 나가보니, 리바이는 아침을 요리하고 있었다. 프라이팬을 찾는 일에 당연히도 실패한 리바이는 비교적 얕은 코펠을 골라 거기다 달걀을 올려두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다가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맛있겠...”
“간밤에 곰이 내려와서 프라이팬을 훔쳐갔나?”
“그, 그럴지도.”
“그래, 곰이 내 대신 스크램블 에그랑 베이컨 구워먹으려고 프라이팬을 가져갔나 보다. 그치?”
낌새가 이상해서 리바이를 보니 그는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움찔해서 코펠로 눈을 돌렸지만,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내 눈은 다시 리바이에게 돌아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네가 범인이야. 너 어제 계곡에서 그릇 씻다가 프라이팬 잃어버렸지?”
“......”
리바이는 의자 옆에 놓인 부지깽이를 집어 들었다.
“말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았지.”
“아, 아뇨. 알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너는 말도 안 하고 내가 박스를 다 뒤집을 때까지 기다렸지. 나 열불 터지는 꼴 보려고.”
“리바이, 달걀. 달걀 타요.”
달걀 상태를 확인한 리바이는 부지깽이를 내려놓고(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뒤집개로 달걀을 휘휘 저었다. 다행히 달걀은 완전히 타기 직전이었다. 그가 “소금.” 이라고 말해서 나는 얼른 소금통을 열어 소금을 치고 눈치를 보았다. 그는 스크램블 에그가 골고루 익도록 저으면서 왼손으로는 다시 부지깽이를 쥐었다.
“잘못한 거 있으면 바로바로 고백하랬지.”
“잘못했어요.”
“진짜 일일이 말해야 아나......”
“리바이.”
“뭐.”
“밤에 안 좋은 꿈 꿨어요?”
반신반의하며 물었지만 그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니면... 밤에 내가 잠꼬대해서 시끄럽게 했나? 혹시 내가 자다가 걷어찼어요?”
“......”
“그랬구나. 미안해요. 난 그런 줄도 몰랐어...”
이제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우는 스크램블 에그는 접시로 옮겨졌다. 완전히 익지 않아 번들거리는 노른자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밤에 잘만 자더군. 미동도 않고 날 끌어안은 채 잘만 퍼잤어.”
“응? 그럼 왜 화가 난 거예요?”
“잠을 못 자서 그렇다.”
“왜요? 뭐 때문에?”
“네 성기능을 걱정하느라.”
“난 건강한데...”
“건강한 놈이, 밤새 날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딴생각 한번 안 들든?”
“......”
“딴생각이 들긴 했나 보군?”
이제 리바이는 팬에 기름을 두르고 베이컨을 몇 줄 올렸다. 한껏 달구어져 있던 코펠이기 때문에 바로 고기 굽는 냄새가 올라왔다. 빨리 먹고 싶었다. 나는 베이컨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대답했다.
“행복하다는 생각... 했는데요...”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리바이를 보았다. 그는 탁 풀린 눈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대단한 놈이야 진짜...”
어쩐지 그 다음부터 리바이는 내게 화내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 것 같았다. 별안간 부지깽이를 툭 내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리바이는 더 이상 혼자 궁시렁거리지도 않고 눈썹을 찡그리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리바이에게 사춘기가 와서 저렇게 기분이 오락가락 하는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스크램블 에그를 먹고 있으니 리바이는 베이컨을 자르지도 않고 접시에 통째로 옮겨 주었다. 이로 알아서 끊어 먹으라며. 그래서 나는 토 달지 않고 얌전히 음식에만 집중했다. 리바이와 한 침낭에 들어가 부둥켜안고 자긴 했지만 그래도 추워서 깊은 잠을 자지 못했기에 얼른 뭐라도 먹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양 볼이 불룩해지도록 먹고 있다가, 문득 리바이가 나를 짠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그를 보았지만 그는 묵묵히 음식을 씹고 있을 뿐이었다. 리바이가 완전히 괜찮아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화내고 갑자기 추스르곤 하는 것이 그의 취미였으니까. 나도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것 같은데 놓친 것 같다는 찜찜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
“나는 어제 네가 갑자기 섹스하고 싶어질까 봐 잠을 설쳤지 뭐냐...”
결국 리바이는 직구를 던졌고, 정답 한 발자국 앞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는 그만 당하고 말았다. 놀라서 켁켁대느라 입안에 든 것이 코로 넘어갔다. 코는 화끈거리고 기침은 나고 그 와중에도 리바이에게서 튀어나온 말이 충격적이어서 정신이 없었다. 가슴을 주먹으로 쳐 가며 콜록거리며 입안에 든 것을 처리하고 허겁지겁 코를 푸니 과연 콧물엔 조금 전 씹었던 달걀 조각이 묻어 나왔다. 나는 아직도 화끈거리는 코 때문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리바이는 나를 무표정하게 보고 있다가 물을 건네주었다. 나는 물을 연거푸 두 잔이나 마셨다.
“섹, 진짜 그거 타령 좀 하지 마요!”
“섹스를 섹스라고 하는 게 뭐.”
“어른이 남사스러운 줄도 몰라요?”
“그래, 너는 남사스러운 걸 아는 애라서 줘도 못 먹는구나...”
“아, 리바이, 진짜 그건 아니잖아요. 이런 데서 자다 말고 붙어먹는 건 싫어요. 같이 욕조에서 와인 나눠 마시다가, 서로 씻겨주고, 촛불이랑 무드등 멋있게 켜 놓은 따뜻한 방에서 다정하게...”
말하다 말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지랄하고 있네.’
도통 리바이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바이가 자신이 화난 이유를 직접 설명까지 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더 화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리바이는 마치 내게 너무 대단한 일을 기대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듯이 체념한 것 같았다. 그 후로 리바이의 표정은 공허하다 못해 얼이 빠진 것 같기도 했다. 리바이가 실망한 걸 알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아닌 건 아닌 거다. 다만 약간의 히스테리는 견뎌야 했다(“엘런아, 침낭을 내게 건네주겠니?” “엘런아, 포크를 박스에 넣어주겠니?” “엘런아, 불에다 물을 뿌려주겠니?”). 나를 유치원생 취급하는 정도야 뭐.
돌아가는 길은 한결 여유로웠기 때문에 주변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울긋불긋하게 얼룩진 가을산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긴 처음이었다. 나는 점퍼를 목 끝까지 잠그고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었다. 리바이는 그런 나를 나들이 나온 애완견 같다고 했다. 그때 점퍼 주머니에서 내 핸드폰이 나왔다. 엄마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해봤는데 통 연락을 받지 않았다. 아마도 엄마가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까 그건 당연하다. 사죄하는 김에 리바이와 놀러갔다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다.
“그러고 보니 어제 별구경을 못 했네.”
“난 실컷 봤는데.”
“왜 나한텐 말 안 했어요.”
“너는 쳐 주무시고 있으셔서 말이지...”
“......아주 추워지기 전에 한 번 더 캠핑가요. 그리고 바닥에다 담요 깔고 누워서 별구경 해요. 낭만적일 것 같지 않아요?”
“응. 거기서 섹스를 한다면 끝내주게 낭만적이겠지.”
“......”
“운동 갔다 오니?”
만 하루에 걸친 외출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더니 엄마는 그렇게 물었다. 한창 싱크대 청소에 열중하고 있던 엄마는 나를 흘끗 보기만 하고 다시 수세미질을 했다.
“운동이요?”
“그거 운동복 아니야?”
“이거 그냥 점퍼인데요.”
엄마는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나를 위아래로 훑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럼 어디 갔다 오는데?”
“산에 갔다 왔어요.”
“산? 여기에 무슨 산이 있다고?”
“차타고 갔죠. 지프 처음 타봤는데 좋더라구요.”
“아침 일찍 갔겠네?”
“아뇨, 어제 낮에 출발했죠. 내가 집에 안 들어온 줄 몰랐어요?”
“얘는... 나 어제 집에 안 들어온다고 말 했잖아.”
“아.”
조그맣게 감탄하며 나는 이마를 문질렀다. 이제야 생각나는데 분명 엄마가 일주일 전쯤 말했었다. 아는 사람이 결혼해서 거길 다녀온다고 했었다. 이웃해 있는 주에서 식이 열리기 때문에 아예 친구 집에서 묵고 온다고,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중요한 일을 잊고 있다가 한 박자씩 늦게 깨닫곤 했는데, 그 중엔 까먹어선 안 되는 일이 더러 섞여 있다는 게 문제였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고무장갑을 벗었다.
“엄마한테 관심 좀 가져라. 어째 아까 왜 전화했나 싶었다.”
“잠깐 잊었어요. 요즘 저도 일이 있고 해서...”
“무슨 일?”
엄마와 내가 이렇게 다시 말하기 전까지는 재혼 문제로 냉전 중이던 터라 거의 말도 않고 지냈는데,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걱정스런 얼굴로 묻는 것이다. 양심이 찔려서 나는 눈을 피하며 점퍼를 벗었다.
“요즘은 엄마랑 좀 그렇기도 했고... 밖에서도 누구랑 싸웠거든요.”
“누구랑? 치고받고 싸운 건 아니지?”
“그건 아니에요. 리바이, 리바이 씨랑 말다툼을 좀 했거든요.”
“네가 리바이 씨랑 싸울 군번이 되니?”
“그럭저럭?”
“그보다 아직까지 잘 지내는 것 같구나. 과외 끝난 지가 일 년인데...”
“좋은 분이니까요. 산에도 리바이 씨랑 다녀온 거예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리바이 씨랑 저녁약속 한 번 잡자. 우리 애 챙겨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 좀 해야겠어.”
“행여나 리바이 씨 앞에서 ‘우리 애’라고 하지 마요. 창피하니까...”
“얘는.”
말하다보니 나는 새삼 엄마에게 감탄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싸운 다음에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앙금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나에게 살갑게 대해 주는 것이 약간은 감동이었다. 그런 엄마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에서부터 내가 어린애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지만 말이다. 이왕 말문이 열린 김에, 나는 엄마에게 산에 가서 뭘 했는지 줄줄 이야기했다. 리바이 씨에게 지프가 있더라고요. 그걸 타고 세 시간쯤 달리니까 산이 나왔어요. 단풍물이 들어서 멋있었어요. 거기서 깊은 산으로 들어가서 차로 막 올라갔어요. 아, 산 이름은 아직도 몰라요. 어쨌거나 거기서 스튜도 해 먹고 소시지도 구워 먹고 놀았어요. 그리고 밤에는...
“밤에는?”
“텐트를 쳤죠. 거기서 우리... 같이 잤는데...”
“재밌었겠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테이블에 놓인 카탈로그를 뒤적거렸다. 그러더니 어느 페이지를 펴며 요즘은 캠핑카도 홈쇼핑에서 판매한다며, 캠핑에 미쳐 은행에서 대출받아 캠핑카를 구입한 직장 동료 이야기를 했다. 나는 엄마의 옆얼굴을 쳐다보며, 엄마가 나와 리바이를 의심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가 아닌가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엄마 아들임을 떠올리자 곧 수긍할 수 있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는 한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다고. 리바이는 아까 나를 데려다주면서 한꺼번에 너무 많이 폭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보통은 커밍아웃만 해도 충분히 충격적이니, 엄마가 기절하지 않도록 선을 지키라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까지 힌트를 흘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은근히 암시하면서 눈치 채게 만들되 서로 얼굴 붉히지 않을 방법이 과연 있는지 모르겠다. “엄마, 그 사람 어때요?” 하고 슬쩍 물어봤더니 엄마가 반색을 하며 나를 보기에 좀 긴장했는데, 엄마는 “그 사람 말이지...” 하고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의 ‘그 사람’이란 엄마의 재혼 상대였다. 나는 김이 좀 식는 것을 느끼며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지금 이렇게 설명해도 내가 직접 보지 않으면 어떤 사람인지 모를 텐데요, 하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가 샤워하라고 등을 떠밀 때 슬쩍 말했다.
“...그럼 리바이씨랑 셋이 한 번 보는 거예요.”
“알았다니까. 너도 아저씨랑 만나본다고 한 거 잊지 마.”
“알았어요.”
“정말 마음 놓고 약속 잡아도 되지? 행여나 마음에 안 든다고 테이블 엎어버리는 거 아닐까 걱정된다.”
“저 그렇게 망나니는 아니에요. 엄마야말로 리바이 씨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안 돼요.”
그러자 엄마는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얘는, 무슨 리바이 씨가 네 애인이니? 마음에 들어 하고 자시고 할 게 어딨니. 리바이 씨는 그냥 리바이 씨인걸...”
엄마의 천진한 웃음과 내 불편한 웃음을 끝으로 일은 일단 마무리 지어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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