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방아쇠를 당겼다. 튕겨진 공기가 손바닥을 간질였다. 빈 총구를 다시 장전하고 조금 전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만약 총알이 꽂혀 있었다면 구멍이 났을 부위를 가늠해봤다. 손을 앞뒤로 뒤집어가며 확인하다가 개머리판을 어깨춤에 대본다. 고개를 기울여 총신을 따라가 가늠쇠에 시선을 맞췄다. 바늘 하나 들어갈 그 조그마한 틈새로, 며칠 전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처음이 어렵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나에겐 처음도 어렵고 두 번째도 어려웠다. 다섯 번이 넘어가고 열 번, 그것보다 훨씬 많은 횟수가 거듭된 다음에도 어려웠다. 나는 보이지 않는 적을 그려본 뒤 그의 가슴께로 총부리를 겨눴다. 리바이 하사가 와서 내 머리통을 호되게 쳤다. 장난치지 마. 약간은 화난 것 같은 말투였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주 화를 냈다.
오전부터 소규모 접전을 펼친 직후였으므로 진영 분위기는 침울했다. 그것보다 규모가 큰 전투도 겪어봤지만 승리감은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은 씨가 마르지 않았다. 자꾸만 머리를 베어도 다시 자라나는 괴물처럼. 나는 우리가 몇이나 죽였는지 세어볼 필요도 없었다. 리바이 하사가 병영을 거닐며 우리 소대원부터 해서 병사를 원위치로 돌렸다. 너,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까 가서 뭐 좀 먹고 와. 너, 너는 탱크 해치에 기름칠을 하고 나사를 조여라. 너는 총알을 확인해. 대포도 잊지 말고. 그런 식으로 그는 병사들에게 사소한 명령을 내렸다. 총을 가지고 헛짓을 하다 혼이 난 나에겐 아무런 명령도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는 총알이 똑 떨어져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나는 종종 총을 끌어안고 앉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일각에서는 나를 벌써 맛 간 놈 바라보듯 하는 시선도 있었고, 아무튼 내게 잔소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건방진 신참, 덜 떨어진 놈, 어린애, 운전 보조, 나를 부르는 칭호는 갖가지였다. 리바이 하사의 별명은 워대디였다. 기막힌 별명이었다. 그는 이 전장에서 병사들의 보호자처럼 보였다. 적어도 우리 소대원에게는 그랬다. 나는 행정병 출신이기 때문인지 전장에서도 종종 열외가 되곤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닥에 앉아 무작정 바라보고 있자면 가끔씩 은밀한 비밀을 알게 됐다. 어느 상사와 상사가 악수를 하고 돌아서서는 서로에게 욕을 하듯 입을 벙끗거렸다는 것이 그 예다. 버릇처럼 손에서 칼을 굴리며 살기로 무장하고 있는 사람은 혼자 있을 때면 성경을 읽었다. 리바이 하사는 남모르게 탱크 뒤로 돌아가선 구토를 하곤 했다.
열외 취급되는 것에도 한계는 있었다. 누군가 와서 내 엉덩이를 걷어찼고, 안 봐도 그가 리바이 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엉덩이가 쪼개질 것처럼 아팠다. 그는 담배를 말아 피우고 있었다. 그는 노려보듯이 나를 쳐다보며 몇 모금 들이마셨다.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가 말했다. 가서 얼굴 씻고 와라. 나는 조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치미는 것을 눌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혀가 먼저 움직였다. 씻으면 뭐가 달라집니까? 그리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올라오는 손을 볼 수 있었다. 장갑 낀 손이 둔탁하게 옆얼굴을 후려쳤다. 나는 더 이상 대들지 못했다. 그리고 명령을 이행하기 위하여 물을 찾아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여기선 누구나 불안했고 누구나 예민이 극에 달해 있었다. 이 정도 투정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다.
탱크 속에 들어가 숨을 죽인 채 진지로 접근하고 정신없이 접전을 치르고 후폭풍에 휩싸이고, 회복하기도 전에 탱크에 들어가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태엽 장난감을 움직이게 하고 다시 태엽을 감는 것처럼. 내가 전장에 내던져진 지 이제 막 일 주일이 넘어간 참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시간이 어쩌면 이렇게 더디게 흐를 수 있는지. 나는 낱낱이 해체되는 것 같았다. 불과 며칠 밤 사이에 커다란 강을 건너온 기분이었다. 다시는 건널 수 없는, 폭이 넓고 깊고 검은 죽음의 물. 강을 건너오며 너무 많은 넋을 해쳤기 때문에,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면 그 넋들에 익사할 것 같았다. 그래서 뒤를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선택지가 한 가지뿐이었다. 끔찍해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지난 일주일과 꼭 같을 일주일이 앞으로도 펼쳐져 있었다. 나는 내가 길의 어디에 와 있는지 알지 못했다.
1945년이 되자마자 나는 그 소대로 편성됐다. 붉은 소인이 찍힌 발령장을 들고 소대를 찾아갔을 때의 긴장감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애초에 나는 행정병으로 차출됐다. 그 전까진 전보를 수발신하는 업무 따위를 하다가 실전에 투입된 신참에 불과했다. 변변한 군사훈련 같은 것 받아본 적 없는 내가 최전방에 투입되었다는 것은 우리 군이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게 됐다는 뜻이다. 그 말도 안 되는 명령에 이의제기 한 번 하지 못했다. 발령장을 받아든 뒤 든 생각은, 내가 총알받이가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내 상사인 리바이 하사를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일찍이 그는 전쟁귀 같은 별명으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앞에서 더듬더듬 관등성명을 했다. 예, 예거 이병입니다. 이번에 이쪽에 배속되었습니다. 여기... 리바이 하사는 무섭게 말했다. 웃기지 마. 나처럼 어린놈이 최전방에 투입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잘못한 것 없는데도 부끄러웠다. 그것이 겨우 일주일 전이었다.
짧고 끔찍한 기억 속에서 교훈은 하나,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상황의 한복판에선 자신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는 거였다.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섰는지 아니면 끝자락에 와 있는지. 사람은 고통의 어디쯤에 서 있는지 알지 못한다. 체감하는 고통의 크기는 상관없다. 고통 속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병영 샅샅이 침투해 있는 우울한 기운은 어딜 가든 우리를 쫓아다녔다. 사람은 위치를 상실하는 순간 미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일같이 거듭되는 극한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미쳐가는 수밖에 없었다. 희망은 간데없었고, 줄어드는 보급품은 살아있어서 느껴야 할 공포와 반비례했다. 리바이 하사는 내게 적을 죽이는 법을 가르쳤다.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매번, 다시는 방아쇠를 당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머리를 메웠다.
나는 손과 얼굴을 씻다가 더러워진 물을 들여다보았다. 흐린 하늘과 못난 얼굴이 그 안에 보였다. 바닥에 물을 쏟아 버리고 조금 화풀이를 했다. 그리고 소매로 얼굴을 쓱쓱 닦은 뒤 우리 소대로 돌아갔다. 탱크 해치는 열려 있었고 아마도 그 안을 점검한 듯한 리바이 하사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그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단숨에 탱크에서 뛰어내렸다. 씻고 왔습니다. 나는 땟국을 걷어낸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는 몇 초쯤 내 얼굴을 보다가 잘했어, 하고 말했다. 그는 또 할 일을 찾아 저편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뒤에 대고 따지듯 물었다. 하사님은 안 쉬십니까? 그가 돌아보았다. 그는 비뚜름하고 서늘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주제넘게 굴지 마라. 그것은 경고였다. 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는 내 손으로 눈을 옮겨갔다. 그는 비웃지도 않았다. 그는 내가 대꾸할 수 없음을 알고는 돌아서서 앞으로 걸어갔다. 소대원들은 몸을 움직이고 무언가에 집중하며 조금 회복한 셈이었다. 나는 이제 리바이 하사가 속을 쏟아내러 갈 차례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막사 모퉁이에 가까워지자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進擊の巨人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늑대수인 엘런과 사냥꾼 리바이 (2) | 2016.08.21 |
|---|---|
| 비겁한 로버트포드의 제시제임스 암살 (0) | 2016.05.23 |
| 병사장의 회고 (0) | 2016.05.22 |
| 또 다른 심야식당 (0) | 2016.05.22 |
| Skyfall (0) | 2016.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