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날개에 배포본으로 냈던 글입니다.
Skyfall
불길한 징조가 머리 위를 맴돈다. 창공을 선회하며 검은 날개를 퍼덕인다. 깍깍 우는 소리를 내고, 날카로운 부리를 부딪친다. 그것들은 언제나 그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죽음에의 징조라는 것은 너무나 진부한 표현이다. 그래서 입에 담을 필요도 없다. 너무나 지극한 사실이기에.
기름이 떨어졌다. 구식 폭스바겐은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어이 멈춰 섰다. 정지된 풍경을 눈에 담기도 전에 거대한 정적이 그들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리바이는 놀라지 않는 대신 눈을 깜박였다. 오일 게이지의 눈금이 이미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으므로 차가 멈추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리바이는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을 향하여 손을 뻗었다. 핸들 위에서 창백한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제 답답한 안전벨트는 안 해도 되겠어. 안 그래?”
리바이는 엘런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놓았다. 그리고 엘런의 안전벨트를 풀어주기 위해 손을 아래로 내렸다. 엘런은 그러나 퍼뜩 놀라며 리바이의 손을 탁 쳐냈다. 마치 방금 손을 쥐였던 감각은 금세 잊었다는 듯이. 그러기가 무섭게 다시 그 손을 허겁지겁 찾았지만. 엘런의 파리한 눈이 리바이를 향했다. 어떡하죠 이제, 하고 묻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잖아.”
리바이는 담담히 말했다. 엘런의 입이 벌어지더니 떨리는 숨이 흘러나왔다. 엘런은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앞에 무언가 답이 있으리라는 듯, 운전대를 열렬히 바라보았다. 엘런은 핸들을 더듬고 라디오의 버튼을 똑딱똑딱 누르고 부산스럽게 굴며 중얼거렸다.
“방법이 있을 거예요, 어딘가, 방법이 하나쯤은...”
엘런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뒷좌석으로 손을 뻗어 지도를 찾았다. 낡은 지도는 너무도 많이 접었다 폈다 하는 바람에 잉크가 휘발되어 있거나 변색되었다. 지명을 읽을 수도 없는 지도를 엘런은 심각하게 들여다보았다. 리바이는 말리지 않았다. 지도를 봐야 수가 없대도, 엘런은 제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믿지 않을 놈이었다. 리바이는 엘런이 지도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굴복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조급해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그들은 자동차를 타고 국토를 두루 돌았다. 국경과 국경을 넘나들었고, 이제는 대륙의 어디쯤 와 있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서너 개월쯤 된 것 같다. 처음에 뒷좌석에는 식량과 옷가지를 비롯한 생필품을 가득 실었지만, 식량은 다 동나고 옷은 모조리 껴입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잡동사니만이 뒹굴었다. 어디서 주웠는지 모르는 구두 한 짝, 캔 오프너, 볼펜 몇 자루, 유리병, 피복이 벗겨진 전선... 낡은 차가 달리며 그것들은 몹시도 덜그럭거렸다. 차가 멎은 후에야 리바이는 그것이 얼마나 신경 거슬리는 소리였는지 깨달았다. 이제 그것들이 다시 덜그럭거릴 일은 없을 테다. 기름이 떨어졌고, 더 이상 조달할 방법이 없으므로. 일단 달릴 수 있는 데까지 달려보자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 계획이었다. 이제 그들에겐 다음 계획이 없다. 리바이는 잡동사니 더미를 뒤져 손잡이가 달린 물건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서 굴리다가, 충동적으로 자동차 문을 열었다.
리바이는 과감하게 바깥으로 나왔다. 대기 중에 축적된 오염물질은 더 이상 그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얼굴과 목을 간질이는 찬바람이 기분 좋았다. 죽은 풀 냄새가 만연한 곳이라도, 바깥바람을 쐬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거리낄 것 없기에 그는 깊이 호흡했다. 불결한 바람이 그의 온몸을 샅샅이 훑었다. 리바이는 얼마간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자동차를 돌아보았다. 이제 보니 그들은 거대한 산으로 둘러싸인 벌판 한가운데 도착해 있었다.
“엘런!”
리바이는 엘런을 불렀지만 엘런은 여전히 차에 갇혀, 쓸모없는 지도에 골몰해 있었다. 안전벨트에 꼭 달라붙어서. 리바이는 엘런의 주의를 끌기 위해 한 팔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그제야 엘런이 지도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리바이가 바깥에 나갔음을 깨닫고, 엘런의 눈은 경악으로 커다래졌다. 엘런은 당장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리바이! 이리 돌아와요! 돌아와!”
리바이는 피식 웃었다. 한 번 터진 웃음은 금세 온 얼굴로 번졌다. 리바이는 화색을 띠고서, 자신을 향하여 뛰어오는 연인을 기다렸다.
“미쳤어요? 죽고 싶어 환장했어! 당장 이리와요!”
“아냐 엘런, 생각보다-”
그러나 리바이는 말을 맺지 못했다. 엘런은 단숨에 리바이의 손목을 낚아채고 그가 달려온 방향으로 이끌었다. 어찌나 단단한 고집이던지, 리바이의 반항은 힘이 없었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리바이와 억지 부리는 엘런이 한동안 씨름했다.
“엘런, 진정해. 아무 일도-”
“중독된단 말이에요!”
“그게 아니라니까!”
“리바이!”
“봐!”
리바이는 온 힘으로 엘런의 손을 떨쳐냈다. 그리고 거칠어진 숨을 토하며 양 팔의 소매를 걷었다. 리바이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그리하여 시체처럼 창백한 살을 보여주었다.
“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
“......”
엘런은 순식간에 망연해진 얼굴로 리바이의 팔뚝을 응시했다. 엘런은 손을 들어, 리바이의 팔꿈치에서부터 손목까지 희미하게 더듬었다. 얄팍한 살갗 밑에서 혈액이 흐르고 있었다. 엘런은 푸른 핏줄을 따라 매만지다가 리바이의 얼굴을 응시했다. 리바이는 소매를 내리고 엘런의 뺨을 쥐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염이 심각한 건 아닌가봐. 당장 죽지 않는 걸 보니.”
“......”
엘런은 다시 말이 없어졌다. 이성적인 사고에서 멀어진 엘런은 그 한마디에 엄청난 위로를 받은 듯했다. 리바이는 아이를 달래듯 엘런을 얼렀다.
“자, 이왕 바깥에 나온 김에 산도 구경하고 심호흡도 해. 난 벌써 기분이 상쾌해졌어.”
엘런은 고분고분했다. 그는 눈을 감고, 리바이가 시킨 것처럼 깊이 심호흡을 했다. 어깨가 높이까지 솟았다가 천천히 내려갔다. 리바이는 그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놓았다. 그리고 조금씩 엘런의 혈색이 돌아오는 양을 바라보았다. 숨을 쉬면 콧속이 얼얼할 만큼 추운 날씨였지만, 엘런은 그것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리바이는 엘런의 목도리를 단단히 두르고 외투의 앞섶을 여며주었다. 엘런이 반짝 눈을 떴다.
“정말.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요. 멀리서 깍깍 우는 새 소리가 들려요.”
엘런은 꿈결같이 말했다. 그러나 리바이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새가 깍깍 우는 곳엔 으레 죽은 몸뚱이들이 있었다. 두 남자의 사체를 쪼아 먹을 거대한 새, 천천히 그들을 세상에서 지워줄 청소부... 리바이의 눈이 흐려졌다. 그동안 엘런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더 온화해진, 원래대로의 엘런처럼 돌아온 엘런이 말했다.
“차에 돌아가기 전에 조금만 걸어도 될까요?”
리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손을 잡고 근방을 거닐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불안한 듯 자꾸만 자동차 쪽을 돌아보는 쪽은 리바이였다. 그들은 줄곧 그런 식이었다. 엘런이 조금 괜찮아지면 리바이가 괜찮지 않아졌다. 엘런은 자신의 손에 장갑이 끼워져 있으며, 그래선 리바이의 손을 제대로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즉시 장갑을 벗었다. 리바이의 한쪽 손에는 엘런의 손이, 다른 손에는 부리가 긴 쇠붙이가 들려 있다. 점차로 그들은 자동차에서 멀어지는 가운데, 그들과 자동차 사이에는 장갑 한 짝이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는 낡은 폭스바겐이 보이지 않았다. 엘런은 여전히 가볍게 산책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리바이가 엘런을 올려다볼 때마다 엘런은 무구한 눈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비로소 리바이에게 그 생각이 찾아오고 말았다. 엘런에겐 이성보다도 몽상이 더 잘 어울린다. 엘런에게 현실은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리바이는 엘런이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두고 온 자동차에 대해서도 잊기로 했다. 그것은 커다란 고철덩어리일 뿐이다. 안에 쓸 만한 물건은 남아있지도 않으니 그것은 쓰레기나 다름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리바이는 엘런의 손을 꼭 쥐었다. 엘런이 이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에, 리바이는 그만 웃었다.
불길한 징조가 머리 위를 맴돈다. 창공을 선회하며 검은 날개를 퍼덕인다. 깍깍 우는 소리를 내고, 날카로운 부리를 부딪친다. 그것들은 지금 그들의 머리 위에 있다. 표적이 된 이상 도망치기란 불가능했다.
그들의 앞엔 천 길 낭떠러지가 있다. 바닥이 보이지도 않는 낭떠러지는 폭도 넓었다. 시선으로도 한참 건너간 뒤에야 저 맞은편에 있는, 마찬가지로 깎아지른 절벽이 보였다. 절벽과 절벽의 사이에는 세상의 온갖 것들이 수렴할 만한 공간이 있었다. 빛과 공기와 구름마저도. 그들은 어마어마한 중력에 압도되었다. 넋 놓고 바라본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그런 절벽이었다. 회귀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바다에 배를 띄우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낭떠러지에 이르게 됩니다. 세상의 죽은 것들은 다 그곳으로 떨어지지요. 빛이 소멸하는 골짜기, 그곳은 하늘이 떨어져도 좋을 만큼 깊습니다. 한 번 떨어지면 다시 올라올 수 없지요. 그러니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됩니다... 리바이의 몸이 앞으로 기우뚱 기울었을 때, 엘런이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
“조심해요. 떨어질 뻔 했잖아요.”
“미안.”
“물러나는 게 좋겠어요.”
엘런은 리바이을 끌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래봐야 죽음에서 겨우 한 걸음 물러난 모양밖에는 되지 않았다. 지반을 믿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리바이는 엘런을 똑바로 마주보고 섰다.
“여기까지다. 다 끝났어.”
엘런은 무서운 낭떠러지에서 눈을 떼었고, 리바이는 엘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금부터 수 분 동안은 눈도 깜박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잔상이 오랫동안 남아있도록, 그는 사랑해 마지않는 연인을 좀 더 눈에 담아두어야 했다. 리바이의 눈에 엘런은 숨 막히게 빛났다. 선택할 것이라곤 한 가지밖에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리바이는 엘런을 도로 낭떠러지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들이 몸을 떨어뜨려야 할 공간을 향하여. 이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불쌍한 트리거맨이 되어 쇠붙이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리바이는 손에 들려 있던 권총을 꽉 쥐었다. 그는 죽기로 마음먹은 순간과 실제 죽음의 사이에 최소한의 공백만 있길 바랐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들의 죽음을 그려보았다. 마지막으로 엘런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그의 몸을 끌어당겨 안았다. 어리둥절하여 가만히 안겨있던 엘런은 곧 리바이에게 팔을 둘렀다. 그리고 좀 더 안기 편하도록 몸을 조금 틀었다. 그들의 몸이 빈틈없이 꼭 맞물렸다. 두 쪽으로 찢어진 그림을 이어붙인 듯이. 얇은 살과 쇠약해진 뼈들 사이에서 심장이 울렸다. 그들은 다시 할 수 없을 만큼 오래도록 포옹했다. 엘런은 리바이의 귀에 입을 누르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 끝났나 보군요.”
엘런의 목소리엔 어떤 감정도 묻어있지 않았다. 리바이는 그가 몽상에서 이성으로 돌아왔으며, 이제 다 체념했음을 깨달았다. 리바이는 마침내 안심했다. 역시, 그래도 마지막만큼은 두 쪽 다 제정신인 편이 좋았다. 설령 두 쪽 다 괜찮지 않더라도.
불길한 징조가 머리 위를 맴돈다. 창공을 선회하며 검은 날개를 퍼덕인다. 깍깍 우는 소리를 내고, 날카로운 부리를 부딪친다. 멀지 않은 하늘에서 그것들은 전력으로 날아오고 있다. 그래서 리바이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들이 옆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엘런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었다. 한 발 남은 총알이 몇 개의 벽을 넘어 그들을 곧장 꿰뚫도록. 엘런의 손가락이 리바이의 손가락을 감아왔다. 그들은 겹칠 수 있는 것은 모두 겹쳤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그들의 평정을 방해하던 까마귀 소리는 간데없이 서로의 떨리는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당당히 서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은 동시에 눈을 감았다. 저주받은 땅에 한 조각 희망도 없었다. 이제는 하늘에 몸을 던지는 일뿐이다. 1초나 2초 뒤에 그들은 찰나보다 짧은 공백을 사이에 두고 쓰러질 것이다. 놀란 새들이 선회하며 까만 깃털을 떨어낼 것이다.
엘런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리바이는 방아쇠를 당겼다. 리바이는 엘런을 죽였고 엘런은 리바이를 죽였다. 죽음은 무엇보다도 빨랐다. 그리하여 그들은 평온히 눈을 감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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