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열 살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학교가 일찍 끝난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말씀드리는 것을 까먹었는데, 그건 뜻밖의 행운이었다. 학교는 한 시에 끝났고, 보모는 평소 하교시간인 세 시 삼십 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올 것이므로 나는 최소한 두 시간 반의 자유시간을 번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 반이 얼마나 긴 시간이며 내가 그동안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정확히 몰랐지만,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일찍 받은 기분이었다. 곳곳에서 모험 냄새가 났다. 나는 씩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도시가 바로 놀이터였다. 빵빵거리는 자동차와 장대같이 커다란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나는 마치 정글에 사는 타잔 같은 기분이 되어 발 닿는 대로 걸었다. 아침에 엄마 차를 타고 학교 갈 때 스쳐보기만 하던 큰길의 풍경 속을 느긋하게 걸을 수 있었다. 오후에 혼자서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기분은 정말로 괜찮았다. 거의 할머니라도 불러도 좋을 만큼 따분한 보모와 오후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던 나로서는 그 날은 작은 일탈이나 다름없었다. 때로 나는 걸음을 멈추고 쇼윈도에 비친 내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코믹스를 파는 가판대 앞에 서서 이번 호에 히어로가 누구와 싸우는지 구경하기도 했다. 핫도그를 파는 수레에선 아예 넋을 놓고 구경했다. 잘 익은 소시지를 집어 빵 사이에 끼우고 순식간에 소스를 뿌리는, 얼굴이 갈색인 아저씨의 손놀림이 어찌나 빠르던지 무슨 요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웃으며 나를 보면서 "엄마는 어디 가셨고?"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제야 머쓱해져서 나는 맞은편에 보이는 거리로 냅다 뛰었는데, 그건 메디슨 스트리트로의 진입로였다. 그 길이 메디슨 스트리트이고,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사건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전혀 몰랐지만 말이다.
그 거리는 완전히 딴 세상 같았다. 나는 어렸지만 그곳이 뭔가 특별하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사람과 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거리와, 노신사들이 한가롭게 걸어 다니는 거리가 좁은 차도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었다. 나는 내가 차원을 뛰어넘어 다른 세계로 들어온 줄만 알았다. 그 정도의 이질감이 들 만큼 거리는 아름다웠다. 키 크고 살찐 가로수가 도로를 따라 죽 늘어서 있었는데, 나무가 어찌나 풍성하던지 하늘이 나뭇잎의 초록빛으로 다 가려졌다. 나뭇잎의 테두리가 햇빛으로 반짝거리는 것이 보석 같았고, 아주 거대한 모빌을 구경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때 생전 처음으로 초록색이 사실은 아주 예쁜 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머리 위의 광경에 시선을 빼앗긴 채 입을 약간 헤벌리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집에 가면 엄마한테 자랑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나는 이 비밀스런 모험에 대해선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하늘을 보고 걸으니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때였다, 기세 좋게 넘어진 것은. 위를 보고 걷다 보니 나는 한 블록의 모서리에 이르러 인도가 끝나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발밑이 허전하다는 걸 느끼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니, 나는 아스팔트로 곧장 쓰러졌다. 내가 넘어졌으며, 그 바람에 무릎과 손이 까져 피가 나기 시작한다는 것이 인지되었을 때쯤 나는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이 녀석!" 하는 소리가 나더니 나는 뒷덜미를 잡혀 다시 한쪽으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너무 순식간이라 나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올려다보니 화난 표정의 아저씨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구시냐고 묻기도 전에 아저씨는 말했다.
"멍청한 놈아! 넘어졌으면 빨리빨리 일어나야지, 길거리에 엎어져 있다가 차에 깔리면 어쩌려고 그래?"
아저씨는 씩씩거리며 내게 쏘아붙였다. 나는 흙과 피로 범벅된 내 손바닥과 아저씨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어린애가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행동이 뭐가 있었을까. 넘어진 것도 억울한데 생판 모르는 남에게 호통까지 들었으니, 다음 단계는 서럽게 우는 것뿐이었다.
우는 게 창피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훌쩍거렸다. 아저씨는 여전히 멍해 있는 나를 끌고 (정확히는 내 뒷덜미를 잡고) 아저씨는 도로를 건너 건물로 들어갔다. 서늘하고 어두운 건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학교에서 받았던 범죄 예방 교육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납치범을 만났을 땐 어떻게 해야 한댔더라.
“여, 여기가 어디예요?”
나는 잔뜩 겁먹은 채 물었지만 아저씨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질질 끌고 계단을 올라갔다.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네?” 하고 나는 손이 아픈 것도 잊고 아저씨의 허벅지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이 놈이 진짜.”
중얼거리며 아저씨는 나를 번쩍 안아서 옆구리에 꼈다. 나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계단으로 내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그때 나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듣기로는 어린애들만 골라서 납치하는 나쁜 놈이 있다더니, 내가 그 타깃이 된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어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아저씨의 아지트다. 이제 나는 고문을 당할지도 몰랐다. 나는 누구라도 내 목소리를 들었으면 해서 더 크게 울었다. 시야가 흐려질 지경으로. 그때 눈앞이 핑 도는가 싶더니, 엉덩이에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아저씨가 나를 소파 위에 내려놓은 것이다. 아저씨는 소파 앞에 있는 테이블에 걸터앉으며 나를 똑바로 보았다. 나는 제발 아니길 바라며 물었다.
“저 죽일 거예요?”
“여기 가만히 있어라.”
그리고 아저씨는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더니 복도를 향해 사라졌다. 뭔가 이상했다. 일단 아저씨는 나를 당장 찔러 죽이진 않았다. 그 공간이 깡패들의 아지트라기엔 너무 깨끗하고 어디선가 소독약 냄새가 난다는 것이 인지되자, 최소한 내가 당장 죽을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알아졌다. 얼마 후 아저씨는 작은 박스를 들고 나타났다. 좀 전과는 다르게 그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하얀 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나는 로비를 다시 둘러보았다. 그곳은 아지트가 아니라 병원이었다.
나는 바보처럼 엉뚱한 착각을 하고 울었던 것이다. 아저씨가 의사라는 것도 모르고 날뛰었던 게 너무 부끄러워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울음이 쏙 들어간 것은 당연했다. 대신 딸꾹질이 나기 시작했지만. 좀 전과 마찬가지로 아저씨는 나를 마주보고 테이블에 걸터앉아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물수건으로 다리와 손의 상처를 닦아내는 것부터. 손에는 피와 흙이 엉겨 붙어 있었는데도 아픈 줄도 모르고, 나는 말없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사람이 무언가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 으레 그렇듯이. 체육관 뒤편에서 상급생들의 키스 장면을 목격했을 때처럼. 아저씨 어른을 그런 식으로 관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검게 늘어진 머리칼 사이, 아래로 내리깐 그의 회색 눈동자가 이쪽저쪽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눈이 움직이는 속도는 빨라서 따라잡기 어려웠다. 눈꺼풀을 깜박일 땐 속눈썹도 같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사람을 아주 가까이서 쳐다보고 있으려니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계속 보면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저씨의 얼굴에 주체할 수 없이 함몰되었던 것이다. 그 장면이 인생에 몇 없을 아주 특별한 장면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안 까닭이었을까. 이윽고 아저씨가 눈동자를 들어 내 눈을 바라봤을 땐 나는 정말로 숨을 멈췄다. 아래로 내리깔고 있을 때완 달리 똑바로 보면 날카로운 눈이었다.
“부모님은?”
아저씨는 내 무릎에 밴드를 붙이며 말했다. 나는 우리 엄마보다 부드러운 것 같은 아저씨의 콧등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손을 멈추고 나와 눈을 맞췄다. “안 계시다고?” 그때 복도에서 웬 할아버지가 쓱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뚝 끊겼다. 마찬가지로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사람의 등장으로 아저씨는 내 보모로 전락해야 했다. 복도에서 나온 할아버지는 그 병원 원장이었고, 내 자초지종을 듣더니 껄껄 웃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배가 고프지 않느냐고 묻더니 아저씨에게 아이를 데리고 가서 요기를 시켜주라고 했다. 아저씨는 치료해 줬으면 된 것 아니냐고 항변했지만 그건 힘이 없었던 듯하다. 결국 아저씨는 내 손의 치료까지 다 끝내고 나를 근처의 카페에 데려가야 했으니 말이다. 아저씨는 내 팔을 끌고 가는 와중 연신 뭐라고 중얼거렸다. 망할, 더럽게 같은 단어가 종종 들리는 것으로 봐서 욕지거리라도 하는 듯했다. 카페의 한쪽 벽은 접이식 창문으로 되어 있었는데, 전부 개방되어 있어 아무데나 앉아도 야외에 있는 기분이었다. 아저씨는 내게 연어 샌드위치를 먹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참치 샌드위치가 더 좋다고 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으니 곧 아저씨가 트레이를 들고 다가왔다. 하교하자마자 도시를 누비고 다니기도 했고 아까 놀랐던 것도 있어서 배가 몹시 고팠다. 나는 반으로 나뉜 샌드위치 중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거는 아저씨 드세요.”
“너나 많이 먹어라.”
“저 이거 다 못 먹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끝내 손도 대지 않았고, 턱을 괸 채 내가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막 갈아서 나온 생과일주스도 맛있었고, 나는 아주 만족스런 식사를 했다. 내가 아저씨 몫이었던 샌드위치까지 거의 다 먹었을 때, 아저씨는 물었다.
“그래, 부모님이 안 계셔서 어떡하냐. 누구 연락할 사람 없어?”
아저씨는 조금 전보다는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그때서야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지금 몇 시예요? 집에 가야 하는데!”
“네 시.”
“그러면 어떡해요! 세 시 반까지 집에 가야 한단 말이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벌써 네 시도 넘었어. 연락할 사람 있으면 전화번호 불러봐. 내가 연락해주마.”
아저씨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나는 집 전화전호를 불러주었다.
그 날은 온통 소란스러운 하루였다. 집에서는 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이미 발칵 뒤집어진 참이었다. 내가 돌아오지 않자 보모가 부모님께 연락을 했었고, 부모님은 학교에 연락을 했다가 내가 행방불명된 걸 안 것이다. 집전화는 보모가 받았지만 보모는 나를 수습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았다. 결국 아저씨는 우리 부모님과도 통화를 해야 했다. 통화 막바지에 이르러 그는 “메디슨 스트리트에 있는 치과입니다.” 하고 우리의 위치를 일러 주었다(그는 바로 치과 의사였다). 길고 침착한 통화 끝에 아저씨는 말했다.
“이거 진짜 웃기는 놈이네. 너 부모님 멀쩡히 계시잖아. 아깐 없다면서.”
“제가요? 언제요?”
“...됐다. 좀만 있으면 어머니가 데리러 오신단다. 기다리면 돼.”
“네.”
“근데 넌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냐?”
“학교가 일찍 끝나서요. 걷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큰일 날 놈이군. 너네 집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먼 줄 아냐.”
아저씨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다시 치과로 돌아갔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환자는 계속 드나들었다. 한 명이나 두 명씩. 아저씨는 그들을 진료하기 위해 안쪽으로 사라졌고 대신 원장 선생님이 나와 함께 있어 주었다. 그는 내가 따분해하지 않도록 징그러운 치아 모형을 갖고 와서 보여 주었다. 시간이 지나 엄마가 헐레벌떡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엄마가 나를 때리지 못하도록 막아 주기도 했다. 어린애가 실수한 것이니 용서해 주시라고. 엄마는 거의 엉엉 울 뻔 했다. 그래도 날 한 대 쥐어박으려는 엄마, 요리조리 피하며 잘못을 비는 나, 그 사이에 원장 선생님과 아저씨까지 말려들어 실랑이를 벌이다가 마침내 나는 허락 없이 아무데도 쏘다니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는 것으로 용서받을 수 있었다. 나를 꼭 껴안아준 엄마는, 다음으로 병원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엄마가 나를 치료해줬던 아저씨 의사의 손을 부여잡을 때 나는 아주 유심히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거기서 내가 내린 결론은 아저씨가 아주 아주 젊다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보다도 젊어 보였으니 말이다.
“선생님 이름이 뭐예요?”
나는 불쑥 물었고, 그 질문에는 원장 선생님이 대신 대답했다.
“리바이 선생님.”
나는 씩 웃었다. 그 뒤 엄마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건물 밖까지 배웅을 나온, 우릴 향해 손을 흔드는 원장님과 뚱한 표정의 리바이와, 가을날의 메디슨 스트리트를. 엄마는 나에게 잘못을 했으니 벌을 주어야겠다고 엄하게 말했지만, 엄마 손은 다정하기만 했다.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엄마는 “우리 맛있는 거 먹고 들어갈까?” 하고 나에게 바람을 넣었고, 우리는 그날 오랜만에 단둘이 외식했다. 모퉁이를 돌아 메디슨 스트리트를 빠져나온 시점부터 우리는 거기서의 일은 다 잊어버린 셈이었다. 엄마는 심지어 나를 혼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나와 데이트했으니까.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는 동화책의 마지막 장면처럼, 우리는 그곳에서의 기억은 그곳에 고이 남겨둔 채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그대로 기억 속에 묻혔다. 우리는, 나는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야 했을까. 몇 년이 지난 다음 문득 그날을 상기했을 때 생각나는 것은 엄마와 먹었던 초콜릿 케이크가 끝내주게 맛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도 무언가 중요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가끔씩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지만 그게 무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정말로 그날 모퉁이를 돌아 나오면서 나는 전부 까맣게 잊었다. 처음 보는 한적한 길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나에게 친절히 말 걸어주던 핫도그 장수에 대하여, 무뚝뚝한 얼굴로 하얀 가운을 걸치던 의사 선생님에 대하여, 그와 잠시 걸었던 거리, 그 모든 것들. 그것들은 단지 기억되어야 할 이유를 갖지 못했기에 내 유년에 잔상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2014년 가을에 썼던 것을 약간 다듬어 업로드ㅎㅎ 덕질과는 상관 없는 단편소설 같은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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