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런리바 오메가버스 현대au
사실 이 이야기를 연대기로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ㅋㅋㅋㅋㅋ
#버릇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자는 것이 버릇이던 때가 있었다. 그건 무거운 배를 주체하지 못했을 때 터득한 요령이었다. 배가 허리를 정통으로 누르면 숨까지 막혔기 때문이다. 리바이는 막 꿈에서 깨어났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아랫배를 더듬더듬 더듬었다. 그러나 배는 평평하고 살은 하나도 만져지지 않았다. 허전했다. 리바이는 몸을 뒤척이다가 침대가 너무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사적으로 침대 맞은편의 아기침대를 보았지만 거기에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질 않았다. 침실엔 온통 허전한 것투성이였다. 리바이는 눈을 몇 번 깜박였다. 깜박임 몇 번에 졸음이 뭉텅 떨어져 나갔다. 그는 침실 밖으로 나갔다.
어스름한 빛이 스며드는 거실에 사람 실루엣이 보여서 흠칫 놀랐지만, 리바이는 곧 긴장을 풀었다. 그가 찾던 것들이 한데 엉켜 있었다. 소파에 반쯤 미끄러져 앉아서 입을 약간 벌리고 잠들어 있는 엘런과, 엘런 위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아이. 아이 등을 덮은 담요가 반쯤 미끄러져 있었다. 리바이는 조용히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잘 때 색색 숨소리를 내는 것이 버릇이었다. 콧물이 나서 코를 막은 것이 아닌데도 아이는 잠에만 빠지면 숨소리가 달라졌다. 가만히 소리를 들어보니 아이가 아주 곤히 잠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리바이는 슬며시 엘런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엘런은 놀라며 깼다.
“여기서 뭐 해?”
“아... 응, 아이가 울어서 달래고 있었어요.”
비몽사몽간에도 엘런은 담요를 추스르며 아이에게 덮어주었다. 엘런은 리바이 대신 우는 아이를 달랬던 것이다. 엘런은 깊이 잠들었던 것인지 오만상을 쓰며 힘겹게 눈을 들었다.
“우유도 다 떨어졌는데 어떻게 달랬어?”
“그냥 안고 달랬죠.”
“날 깨우지.”
“어떻게 그래요. 그렇게 곤히 자는데...”
마지못해 리바이는 피식 웃어버렸다. 엘런도 이제는 그 집에서 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엘런은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혹시 땀이 배어나진 않는지 확인했다.
“그래도 잘 자네요. 불편한 것도 모르고.”
엘런 말대로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천사 같이 평온한 얼굴이었다. 아이는 자지 않으려 투정을 부리다가도 엘런의 가슴 위에 올라가면 금세 잠들었다. 아이는 판판한 가슴이 불편하지도 않은가보다. 오히려 엘런의 선명한 박동 소리가 아이에게 자장가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고, 리바이는 가끔 생각했다. 그 방법의 단 한 가지 단점은 엘런도 잠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뿐이었다. 엘런은 눈을 비벼 정신을 차린다. 아이의 뒷머리를 조심스레 받치고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그대로 침실 안으로 직행한다. 마침내 품에서 떨어뜨려 아기 침대에 누이니 아이는 좀 칭얼대는 듯했다. 끙끙거리는 소리가 났다. 엘런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아이의 배를 쓰다듬는다. 쉬, 착하지, 따위의 말을 속삭이며. 다행히 아이는 깨지 않고 이어서 잤다. 엘런은 지친 듯 그 옆에 있는 침대에 벌렁 드러눕는다.
#눈 내리는 금요일
하늘이 점점 흐려지더니 진한 회색으로 변했다. 하늘은 어찌나 무거워보였던지 당장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았다. 창가 쪽에 앉아 일하는 리바이는 가벼운 오한을 느꼈다. 오후가 되었음에도 기온은 도무지 올라갈 생각을 않는 것이, 단단히 추운 날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잖아도 아침 뉴스에서 기상캐스터가 과장된 몸짓으로 추위를 예고하던 것이 생각났다. 따뜻한 실내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있었기에 뉴스를 한귀로 흘려들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한파주의보 어쩌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침들은 제대로 챙겨 먹었을까. 집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히 생각이 그들에게로 옮겨갔다. 금요일은 엘런이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어서, 엘런이 종일 아이를 본다. 리바이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쿨쿨 자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당연히 일어났을 테지만 세수나 했는지 모르겠다. 아침과 점심 모두 먹었을까. 전화를 해 볼까. 난방 끄지 말고 오늘은 계속 집에나 있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리바이는 잠시 그들 생각을 하다가 이내 업무내용이 떠 있는 모니터로 관심을 돌렸다. 엘런이 알아서 잘 하고 있을 것이다.
와, 밖에 눈 오는 것 봐요. 옆에서 동료가 말했다. 재색에 가까워진 하늘에서 사정없이 눈을 뿌리고 있었다. 리바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눈송이는 어찌나 큼지막한지, 그것만 보고서도 폭설이 쏟아지리라는 것이 예상되었다. 창틀을 보니 벌써 눈송이가 차곡차곡 얇게 쌓이고 있다. 곧 온 도시가 새하얗게 덮이리라. 리바이는 엘런에게 문자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눈 온다. 추우니까 집에 있어.
리바이의 사무실은 꽤 높은 층에 있어서 다른 건물들의 꼭대기가 보이기도 한다. 문득 창밖으로 고개가 돌아갔는데 하얗게 변한 어떤 지붕이 보였다. 하늘은 여전히 힘차게 눈을 쏟아냈다. 유리공 속 하얀 가루처럼, 눈송이는 공중에서 우왕좌왕 부대끼면서도 착실히 지상을 향하여 다가갔다. 핸드폰을 보았는데 엘런의 답장은 없었다. 메시지를 확인했는데 무어라 답장할 말이 없어서거나, 바빠서 보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아이가 다른 사람이 아닌 엘런에게 맡겨져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평소보다 자주 아이 생각이 나는 대신,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숙련된 보육사보다도 어설픈 피붙이가 더 믿음직했다.
그날 시간은 더디게 갔다. 해가 다 저물도록 눈은 기세가 죽지 않았고 퇴근시간 무렵이 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며 귀갓길을 걱정했다. 도로에 점점이 늘어진 불빛들이 더딘 것으로 보아 교통이 마비된 것은 분명했고, 메트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오늘 눈이 올 줄 모르고 힐을 신고 왔던 사람은 울상을 지었다. 누구는 옷을 더 두껍게 입고 올 걸 그랬다고 투덜거렸다. 눈 오는 날이면 온 도시가 소동이었다. 리바이는 그러나 기꺼웠다. 마침내 집에 갈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온종일 엘런과 함께 놀았을 아이를 어서 보고 싶었다. 리바이는 그날 업무를 마무리하고 미련 없이 사무실을 떠났다.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요란한 도로의 소음이 쏟아졌다. 도로가 그야말로 꽉 막혀서 차들은 제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는 와중 여기저기서 참을성 없이 경적을 울리는 바람에 시끌시끌했다. 버스를 타느니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를 듯했고, 걷는다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릴 테니 그나마 나은 수단은 메트로였다. 리바이는 버릇처럼 허공을 한 번 올려다보곤 목도리를 단단히 추슬렀다. 그리고 역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을 때,
“리바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리바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맞는지 확신 없어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과연 인파 속에 엘런이 있었다. 아이를 안고서. 아이는 엘런을 따라 리바이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기가 막혔다. 어떻게 된 거야, 리바이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다가갔다. 두 사람은 추위에 절어 있었다. 양 볼이 빨개져선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이다. 리바이는 장갑을 벗고 아이의 뺨부터 만졌다. 리바이의 체온보다 차가워서 가슴이 철렁했다.
“추운데 집에 있으라고 했잖아...”
분명 화를 내려 했다. 비난하려던 말은 그러나 걱정하는 어조가 되고 말았다. 이 추운 날에도 여기까지 온 정성이 그래도 갸륵해서. 리바이는 아이를 받아 안았다.
“눈 구경 하려고 나왔었는데, 오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눈까지 내리니 엘런 딴에는 아이를 중무장시켜서 데려나온 것 같았다. 옷은 다섯 겹은 입은 듯했고 머리엔 털모자까지 썼다. 그러나 장갑은 한 짝뿐이고, 장화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오다 보니까 올 거리’가 절대로 아닌데. 걸어왔어?”
“네. 같이 손잡고 걸어왔어요. 눈 밟는 느낌을 알려주고 싶어서.”
“......
그만 리바이는 할 말을 잃었다. 저에게 푹 안겨서 반가운 옹알이를 늘어놓는 아이와, 아이를 고생시키면서까지 저를 만나러 온 엘런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엘런이 문자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았던 것은 과연 바빴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바빴던 것인 줄은 몰랐지만. 엘런은 칭찬을 바라듯 씩 웃어보였다. 머리와 어깨에 눈이 쌓여 바보같은 줄은 모르고. 리바이는 그들에게 어리석다고 화를 내지도, 와 주어 고맙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리바이는 말없이 아이 모자에서 눈을 툭툭 털어주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춥지 않았어? 이만한 눈은 처음 보지. 리바이는 아이에게 말을 시켜가며 걸었다. 엘런이 리바이보다 한 걸음 앞에서 걸으며 인파를 헤쳤다.
메트로 역 근처에는 상점과 음식점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가게의 불빛들이 알록달록한데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캐럴같은 것이 울려 퍼져서 아이는 정신을 팔린 듯했다. 사방팔방으로 눈을 돌리며 쳐다보는 것이다. 여기까지 나왔는데 바로 집에 돌아가기도 뭐했다. 리바이는 적당한 레스토랑을 떠올리고, 그곳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엘런은 흔쾌히 동의했다.
저녁시간 창가 자리는 만석이게 마련이었지만, 그들이 레스토랑에 들어선 순간 창가 쪽 테이블이 하나 비워졌다. 운이 좋았다. 그들은 창가 자리를 잡았다. 아이의 털모자부터 벗겼는데 아이 머리는 어쩐 일인지 까치집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정전기가 일어서 사방으로 곤두서고 말았다. 리바이는 아이의 머리를 싹싹 빗어 눌렀다.
“머리 안 빗겨서 나왔어?”
“아니, 빗겼는데...”
말 흐리는 걸 보아하니 안 빗긴 모양이었다. 그 정도 거짓말은 귀여운 수준이니 리바이는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외투도 한 꺼풀 벗겨주니 아이는 한결 편안해진 듯했다. 좀 자유로워진 아이는 얼른 유리창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코를 창에 바싹 붙이고 바깥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과 자동차 불빛들. 유리창에 콧김이 어렸다 사라졌다 해서 우스웠다.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 올 생각을 다 했어?”
리바이는 한결 누그러진 얼굴로 물었다. 엘런은 메뉴판을 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고. 엘런은 손을 맞비비며 입김을 불어 녹였다. 리바이는 다음날 그들이 앓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으나, 일단은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엘런은 그들이 하루 종일 무얼 했는지 말해주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간질이기 놀이를 하고, 점심을 먹고 낮잠도 좀 잤다고 했다. 한 일이 없는데 벌써 하루가 다 갔다고 했다. 엘런은 앗 하고 아이를 쳐다보더니, 아이가 눈을 먹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작은 눈덩이를 만들어서 쥐어주니 그것을 입에 넣었다고. 그걸 못 하게 했더니, 아이는 하늘을 보다가 입을 벌리고 눈을 맛보았단다. 아이는 손바닥에 닿자마자 물방울로 녹아버리는 눈을 신기해했다고 했다. 리바이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자기 얼굴이 어떤지 몰랐다.
곧 따뜻한 수프가 나오자 리바이는 아이를 불렀다. 이제 아이는 나름대로 자기주장을 할 줄도 알았는데, 스푼을 자기가 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직 서툴러서 포크로 간신히 찍어먹는 것밖에는 못하는데도 말이다. 수프를 흘렸다간 화상을 입을 수도 있었으므로, 리바이는 아이와 약간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엘런이 결론을 내주었다. 엘런은 아이에게 티스푼을 하나 쥐어주었다. 티스푼 정도 양이라면 흘리더라도 크게 다치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비로소 만족한 듯 얌전해져서 티스푼을 접시에 담갔다. 수프를 휘휘 젓느라 정신이 팔려서, 리바이가 큰 스푼으로 떠다가 입으로 가져가주는데도 불평 없이 받아먹었다. 아이를 얼마간 먹인 뒤에야 엘런과 리바이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다시 빽빽한 인파 속으로 들어가 집까지 헤치고 가야 하는 여정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 그들의 시간이 눈처럼 소복소복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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