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강물 흐르듯이. 흐름을 내어주지 않는 물살이 고요히 너른 바다로 나아가듯이. 오이카와及川는 자신의 이름자처럼 그 말을 신조로 삼았다. 실기시험이 코앞이었고, 오이카와는 겨울방학에도 아침 다섯 시에 일과를 시작했다. 도쿄에서 오이카와 토오루를 불렀다. 체대에 간다면 일순위로 가고 싶었던 학교에서 먼저 접촉을 해왔다. 그만큼 오이카와가 고교배구에서 나름대로 활약했다는 뜻일 테다. 체대에 진학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와이즈미나 마츠카와나 마찬가지여서 그들과 하루 종일 트레이닝했다. 아오바죠사이 1, 2학년의 새로운 전술에 맞추어 그에 걸맞은 연습상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인터하이에서 좌절하고 봄고를 준비했듯, 그들은 봄고 후에도 배구에 여념이 없었다. 겨울이 유난히 일찍 찾아온 해였다. 다시 흐름을 탄 오이카와는 추운 줄을 몰랐다.
어른이 되기 전에는 모든 감정들이 날것이었다. 그런 만큼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전국대회의 문턱에서 좌절했던 기억들. 그리고 마음을 다잡았던 기억들.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이 무렵을 회고했을 때에도, 어쨌거나 자신은 배구의 길을 택했으리라는 것이 오이카와의 생각이었다. 그가 배구를 사랑한다는 건 변치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그때에 우시지마가 오이카와 방황의 시간을 줄여주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때 그는 오이카와가 곧장 가야 하는 길을 가리키며 등을 떠밀어주었다. 어서 가라고, 저기 너의 빛이 보이지 않느냐고. 오이카와의 마음을 대신해서 짚어주는 이가 있어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우시지마의 충고가 아니었더라면 오이카와는 실기시험을 치러 가는 길에도 여전히 그 길이 맞는 걸까 망설였을 것이다.
늘 현 예선에서 이겨 도쿄에 입성하고자 목표했지만 도쿄의 대학에 시험을 치러 가는 기분은 좀 색달랐다. 도쿄의 벽을 까마득하게 높게 생각했던 것이 불과 한두 달 전이었다. 긴장은 되지 않았다. 중학교 입시도, 고등학교 입시도 너끈히 치렀던 오이카와였기에 대학입시도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했다. 그에겐 착실히 쌓아온 시간들이 있고 그는 자신을 증명하는 일에 도가 텄으므로. 도쿄로 시험을 보러 가는 날은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건투를 빈다]
신칸센을 타고 가는데 우시지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부원들에게 오이카와가 시험 보러 간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정말이지 미야기 고교배구의 세계는 너무 좁아서 누가 어디를 가고 언제 어디서 수험을 치는지 소문이 발 달린 듯 퍼진다. 얼마 전에는 우시지마가 진학하지 않고 해외로 떠난다는 소식이 아오바죠사이에까지 닿아, 다들 그 녀석은 그럴 만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었다. 운동선수로서 정석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는 사람이, 오이카와의 입시운을 기원해준다고 생각하니 좀 우스웠다. 오이카와는 한동안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건투를 빈다니, 너무나 우시지마다워서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그 즉시 우시지마에게 답장했다.
[실기시험 끝나고 볼래?]
도쿄에서 하루 묵고 천천히 돌아오려던 것이 당초 계획이었지만, 오이카와는 수험장 교문을 나서자마자 부랴부랴 기차역으로 달려가 센다이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열차를 잡았다. 기력이란 기력은 다 끌어쓴 날이었기에 녹초가 되었다. 자리에 착석하고 나서야 오이카와는 핸드폰 전원을 켜고 그를 걱정하는 메시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잘 하고 있냐고,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 말들. 개중에는 우시지마의 것도 있었다. 지금쯤 네 순번이 되었을지 궁금하다는 말. 시험이 끝나는 대로 결과를 알려달라는 말. 본인의 입시에도 이렇게 걱정했을까. 우시지마는 배구에만 성실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오이카와는 그에게 답장을 보내놓고, 눈을 비비며 이와이즈미에게 전화부터 했다. 실기는 그럭저럭 치렀다는 말과 함께 내일모레가 시험인 그에게 오이카와가 시험장에서 뭘 했는지 낱낱이 설명해주었다. 시험장의 열기와 긴장은 중고등학교 입시와 비슷하니 평소 하던 대로 잘 하고 오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이와이즈미는 다른 무엇보다도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름없는 것에 크게 안도한 듯했다. 무사히 열차를 타서 이와이즈미에게 보고까지 했으면 할 일은 다 한 거다. 결과야 어떻든, 오이카와는 올해의 가장 큰일을 다 치렀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듯했다. 오이카와는 점점 어둠이 깔리는 풍경을 내다보다가 꾸벅 잠들었다. 오이카와 손에 들린 핸드폰에는 그가 직전에 우시지마에게 보냈던 메시지 창이 떠 있었다.
[지금부터 미야기로 돌아갈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미야기에는 싸리눈이 내리고 있었다. 기차역을 나와 오이카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시지마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어디서든 알아보기 쉬웠다.
“오이카와.”
그를 발견하고 우시지마가 급히 걸어왔다. 오이카와는 가만히 서서 그가 다가오는 양을 바라보았다. 그는 오이카와에게 우산을 드리워주었고, 오이카와는 빙그레 웃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우시와카.”
“.........”
우시지마의 코끝이 빨갛게 얼었기에 장난 좀 쳐본 건데. 눈도 오는데 왜 융통성 없이 실내에서 기다리지 않고 바깥에서 기다렸냐는 뜻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우시지마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저 오이카와를 응시했다. 덩달아 오이카와에게서도 장난기가 걷혔다. 우시지마를 곧장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누군가 그들 곁을 지나치면서 우산을 툭 치곤 실례합니다, 하고 말하는 소릴 들었다. 그러나 서로에게 함몰되듯 바라보고 있는 그들에게 그런 것은 하등 중요치 않았다. 다녀왔어. 이 한 마디 해주면 될 텐데 우시지마에겐 말이 바로 나가지가 않았다. 서로 만나서는 눈만 들여다보고 있는 건 무슨 경우인가. 어쩐지 몸이 뜨끈뜨끈한 건, 아직 시험장의 열기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이카와는 깊은 고민 없이 우시지마에게 연락했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우시지마는 너무나 진지했다. 우시지마는 결코 가벼운 기분으로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덩달아 오이카와도 차분한 마음으로 진실을 고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괜히 오이카와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도쿄에서 부랴부랴 오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오이카와를 위해 식당부터 찾아 들어갔다. 오이카와는 따뜻한 국물 요리를 먹고 싶다고 했고, 그들은 역 앞에 바로 보이는 우동집에 들어갔다. 구석자리에 앉아 오이카와는 양쪽 팔을 문지르며 몸을 떨었다.
“미야기가 춥긴 춥네. 도쿄는 여기만큼은 안 춥더라.”
“......오이카와, 결과는?”
우시지마가 물었다. 답지 않게 긴장한 얼굴에 오이카와는 씩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최고의 컨디션이었지.”
“정말로?”
“내가 거짓말을 왜 해. 근데 대단했어.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놈들은 다 왔거든. 전국대회에 가면 그런 느낌일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 우시와카 너는 촌스럽다고 생각하겠지만 뭐.”
오이카와가 능청스레 떠들었다. 그제야 우시지마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시험을 잘 봤다면 다행이다.”
“걱정했어? 또 배구 관둔다고 할까봐? 나한테 체대 가라고 등 떠밀었던 게 누군데 약한 소릴 하시나?”
“......그런 소리는 마라, 이제.”
“걱정 말라고 하는 소리야.”
오이카와가 말하며 젓가락을 뜯었다. 금방 조리된 우동 두 그릇이 테이블에 놓였다. 에너지드링크와 초콜릿 따위 간식을 빼면 그날 오이카와는 점심 이후로 쫄쫄 굶은 속이었다. 오이카와는 잘 먹겠다고 말한 뒤 국물부터 떠 마셨다. 겨울날에는 따뜻한 국물을 몇 입 먹는 것만으로 금세 몸에 훈기가 돌았다. 삶은 면은 부드럽게 넘어갔고, 피곤했던 머릿속이 한결 맑아지는 걸 느끼며 오이카와는 열심히 먹었다. 얼핏 우시지마 쪽을 보니 그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왜 넋놓고 있냐는 뜻으로 오이카와가 그를 바라보니, 우시지마는 자기 그릇을 오이카와 쪽으로 밀었다.
“이거까지 다 먹어라.”
우시지마는 정말로 먹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실랑이를 벌일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배고픈 건 오이카와였다. 그래서 오이카와는 제 몫의 우동을 다 먹은 다음 우시지마의 것도 먹어치웠다. 오이카와는 먹는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니었다. 오이카와가 두 그릇을 다 비우는 동안에 우시지마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주었다. 그는 따뜻한 우롱차만 천천히 마셨다.
따뜻한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더니 몸도 노곤해졌겠다, 피로가 덮쳐오고 있었다. 그러나 우시지마는 먹지도 않는 우동을 먹자고 불러낸 건 아니었다. 불러낸 이상 무언가 말해야 했다. 졸업 축하한다든지, 네 덕에 시험을 치고 왔다든지 인사치레를 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만나고보니 기류가 어색했다. 이게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마 그들을 입다물게 했는지도 모른다.
“걸을까.”
가게를 나와 우시지마가 제안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시지마가 자신의 우산을 펴들었다. 둘은 익숙하게 우산 밑으로 몸을 숨겼다.
시린 허공에서 눈이 쏟아졌다. 센다이 역에서 시내까지, 정처를 정해두고 움직인 건 아니었으나 둘은 그저 말없이 걸었다. 좋든 싫든 헤어짐을 목전에 두고 있으려니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이를테면, 우시지마와 둘이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몇 개월 전만 해도 오이카와에게 우시지마는 이기겠다고 벼르던 라이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냥 라이벌인 채로 지낼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 않나. 둘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 6년은 눈 감고도 서로의 속을 읽는 지경에 이를 수 있는 시간이다. 우시지마는 어쩌면 친구로 지낼 수도 있었던 녀석이란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을 수도 있다. 배구경기를 같이 본다든지, 서로 집에 놀러가서 게임을 한다든지, 로드워크 파트너가 된다든지. 졸업기념으로 같이 여행을 간다든지. 아오바죠사이 부원들과 함께하는 일들을 우시지마와 할 수도 있었다. 문득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 우시와카, 졸업식도 안 하고 가네?”
“......그래. 이달 말에 출국이니까.”
“......하긴, 졸업식 같은 게 너한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정말로 그랬다. 우시지마는 더 이상 아오바죠사이와 호각을 다투던 라이벌이 아니었다. 그는 한때 아오바죠사이와 나란히 코트에 섰던 선수가 되어있었다. 나중에 그들은 고교시절 우시지마와 여러 번 경기했었다고, 그때에는 시라토리자와가 세이죠 숙명의 라이벌이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오이카와는 그때를 상상해보았다. 우시지마와 대등히 승부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영광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먼 훗날, 시간이 지나고 이 기억들이 숙성되면 말이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가 생각에 잠긴 걸 보며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오이카와는 곧 생각을 갈무리하고 웃었다.
“공원 갈까? 그때 거기.”
걸어가기에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눈을 맞으며 그만한 거리를 거뜬히 걸을 수 있었던 건, 두 사람 모두 운동을 하는 이들이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상대가 우시지마였다. 도중에 눈이 멎었다. 둘은 우산을 접고, 가까이 붙어있을 이유가 사라졌으므로 조금 떨어져 걸었다. 불빛이 점점이 밝혀진 시내에서 공원으로 접어들자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공기에는 막 내린 눈의 냄새가 가득했다. 너무나 깨끗해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가벼운 설렘이 감도는 공기의 냄새. 산책로를 따라 오렌지색 가로등 불빛들이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산책로에는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깔려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들의 발이 눈길에 발자국을 내는 것을 보며 걸었다.
“밤에 오면 꽤 운치있어. 나는 가끔 오거든. 야간연습 끝나고...”
문득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오이카와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
우시지마의 왼손이 오이카와의 오른손을 쥐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낯선 감촉을 받아들이는 데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조금 헤벌어진 입으로 우시지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직후에 아, 하고 조그맣게 감탄했다. 센다이 기차역에 도착한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던 그 얼굴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네가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은.
오이카와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눈이었다. 마주보면 이렇게나 열렬했던 눈이었다.
오이카와는 얼굴이 벌게지는 것을 느꼈다. 당황해서 주저하는 손을, 우시지마가 좀더 힘있게 감싸왔다. 저항할 수 없는 다정함이 차가운 손의 온도를 압도하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시선을 돌리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너는 어쩌면 그렇게 나를 잘 아는지 몰랐다. 네가 나를 몰아세워도 나는 화내지 않을거라는 걸, 화내기는커녕 너를 직시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우시지마는 오이카와 토오루에 대해서라면 놀랍도록 잘 알고 있었다. 우시지마에게는 오이카와가 단순히 상대학교 선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이카와가 외면하고 있었을 뿐, 우시지마는 늘 오이카와를 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열띤 시선에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섞여있다는 걸, 오이카와는 너무 늦게 알았는지도 모른다. 오이카와는 가만히 그들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오이카와는 아주 느린 속도로 손을 빼내었다. 우시지마의 손에서 천천히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 허전해진 손에 금세 차가운 공기가 들어찼다.
참 이상한 일이다. 너를 이런 식으로 볼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다시 우시지마에게 손가락을 얽으며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손끝을 닿이자 손가락이 마주 얽혀왔다. 우시지마의 손은 보기만큼 투박하고 단단했다. 더없이 강인한 운동선수의 손이었다. 동시에, 막 내린 눈을 밟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사이사이 얽혀든 손가락과 맞닿은 손바닥으로 떨림이 전해졌다. 오롯이 느껴지는 손의 감각들. 오이카와는 모든 불가해함을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했다.
“......언제부터였던 거야, 우시와카.”
눈을 들어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우시지마는 몸을 틀어 오이카와를 정면으로 보았다.
“나도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게 우시지마의 대답이었다. 오이카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손의 언어가 이렇게까지 적나라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항상 오이카와로 하여금 제 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리고 오이카와가 마음을 정리하도록 차분히 기다려준다. 그런 너를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을까. 이제 오이카와는 자신의 안에까지 번진 떨림을 차분히 인정할 수 있었다. 우시지마와 한쪽 손을 깍지낀 채로. 오이카와는 흔들림 없는 우시지마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니 더 명료해졌다. 깨끗하고 새까만 우시지마의 눈동자에 무엇이 비치고 있는지 말이다. 오이카와가 턱을 조금 들자 코끝이 닿을 듯했다. 오이카와는 빈 왼손을 들어 우시지마의 뺨을 문질렀다.
“이제 네가 보여. 와카토시.”
내가 일찍 너를 직시했더라면. 너를 부정하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몇 걸음, 몇 센티, 우리 사이의 거리란 겨우 그 정도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나란히 졸업을 앞둔 지금에야 느낀다. 어느새 우리는 같은 기류에 휩싸여있다. 작은 깨달음들이 오이카와의 머릿속을 느리게 흘러갔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얼굴을 당겼다. 입술이 겹쳐지는 걸 느끼고 그는 눈을 감았다. 닿은 온도를 그저 느끼고 있는 일만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우시지마가 고개를 조금 비틀자 입술이 깊이 맞물렸다. 조금 벌어진 틈으로,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숨줄기가 새어나와 얼굴을 간질였다. 두근거리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고요 속이었다. 그들 귀에는 입술을 떨어뜨렸다 다시 맞추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그날 그들은 각자의 세계 끝에 다다라 있었다. 오이카와의 고교배구, 우시지마의 짝사랑. 그들의 세계는 우산 아래처럼 좁다랬는지도 모른다. 교차할 수도 있었던 두 세계는 나란히 막을 내렸다. 그들을 번뇌케했던 것들에 작별인사를 건네어 마침내 포옹할 수 있게 된다면 또 하나의 세계가 시작된다는 것을, 그때에는 몰랐다. 어리고 미숙했기에 미처 몰랐던 것들. 압도적인 진리처럼 여겼으나 돌이켜보면 단지 하나의 분기점에 불과했던 순간들. 또 하나의 세계가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날 우시지마가 센다이 역에서 세 시간을 기다렸다는 사실이나, 그날 오이카와의 가방에는 우산이 들어있었다는 사실 같은 몇 가지 진실들은 각자의 기억 속에 사장되었다.
*
계절과 시간이 막힘없이 흘렀다.
오이카와가 대학에 진학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 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였다. 예상 이상으로 대학생활은 즐거웠다. 아오바죠사이 아닌 곳에서 배구를 하는 건 어색했지만 오롯이 배구에 골몰할 수 있다는 이점은 대단했다. 고등학생 때에는 방과후가 되어야 할 수 있었던 배구를 대학생이 된 후에는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커리큘럼이 배구를 중심으로 편성되었고 오이카와는 하루 스물네 시간을 배구에 투자할 수 있었다. 안일하게 만족하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그에게는 국내 리그 장악이라는 보다 높은 목표가 있었고, 오이카와는 배구연습 외에도 학교별로, 팀별로 전략을 분석하고 선수 개개인에 대한 데이터북을 만드는 일을 병행했다. 국내 대학리그의 세계는 오이카와가 보다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풀을 제공해주었다. 시라토리자와와 카라스노를 상대하기에 급급했던 지난날들과는 다른 세계였다. 배구잡지의 지면으로 봤던 선수들과 동기로 만났다. 그런 선수들을 관찰하는 것으로도 큰 공부가 되었다. 오이카와가 주전으로 뛰지 않는 경기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경기하는지 분석하고 소화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세터다. 오이카와의 강점은 팀의 고유한 기류를 만드는 일이었다. 고요히 지켜본 다음 최선의 전략을 선택하고, 누구에게든 그들이 원하는 공을 던져주고, 흐름에 섞여들듯 경기하는 것이 오이카와였다. 그의 무대는 이제 전국으로 확장되었다. 고등학생 때에는 그렇게 갈망했던 전국무대를 이제는 낱낱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을 더 갈고닦아야 했는데, 오이카와가 한동안 근력운동에 집중하며 스파이크 실력을 키운 시기가 있었다. 원하는 지점에 공을 때려넣는 정확도까지 겸비한 트레이닝이었다. 괴물 같은 스파이커들을 곁에 두고 자극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그를 보다 효율적인 포지션으로 전향시키려는 고민도 했으나, 오이카와는 세터가 어울린다는 결론이 났다. 무엇보다 오이카와 본인이 세터를 원했다. 세터로 시작한 배구였고, 그는 자신이 세터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경기의 흐름이 그의 손에서 빚어졌다. 더 이상 오이카와 토오루는 만년 유망주가 아니었다. 머잖아 국가대표에 합류할 신인선수들을 다루는 특집기사에 그의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경력이 착실히 쌓여갔다. 배구하는 동안에는 행복했으므로 그가 한때 겁냈던 선택 같은 것은 잊어버리게 되었다. 배구의 세계는 여전히 오이카와에게 어떤 약속도 해주지 못했지만, 적어도 오이카와가 마음껏 활약할 수 있도록 지평을 넓혀주었다. 오이카와의 선택은 여전히 옳았다. 그것으로 현재는 충분했다.
한 가지만 빼놓고.
1년쯤 있어보고 돌아올 거라던 계획과는 달리 우시지마는 꼬박 2년을 해외에 있었다. 우시지마는 미국 실업팀에서의 처음 1년을 다 채우기도 전에 독일의 구단에서 러브콜을 받아 유럽으로 건너갔다. 물론 새 구단에서 우시지마의 이적료를 전액 부담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란 이름이 국내 스포츠뉴스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시지마는 기대에 부응하는 선수였다. 유럽리그에서 활약하는 아시안의 소식은 머잖아 국내 언론을 열광케 했다. 우시지마의 행방은 늘 화젯거리였고, 오이카와는 어렵지 않게 우시지마의 소식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오늘 MVP 수상 축하드립니다. 계약기간이 곧 만료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다음 계획은 있으신가요?'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잠시 국내에 들어가려 합니다.'
지난 달, 그의 팀은 4강에 머물렀으나 우시지마가 개인상을 수상한 리그의 인터뷰였다. 우시지마는 배구계에서 착실히 저변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비시즌일 때에도 단 한 번도. 오이카와가 접한 우시지마의 마지막 소식은, 그가 오늘새벽 취재진의 환영을 받으며 나리타공항으로 입국했다는 거였다. 뉴스화면을 통해 바라보는 우시지마의 얼굴은 여전히 저 멀리 유럽에 있는 것처럼 낯설었다.
숨도 쉬지 않고 달려온 2년. 아직 현실감을 느끼지 못한 채 오이카와는 기숙사를 나섰다.
창문에 서리가 끼는 계절이었다. 미야기로 돌아오는 내내 오이카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손등으로 창문을 문질러 닦았다. 어둠에 잠식되고 있는 바깥풍경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창문에 비친 그의 흐릿한 얼굴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2년 전, 그가 도쿄에 시험을 치러 왔던 날과 비슷한 날씨였다. 센다이 행 신칸센은 그에게 생생한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이것도 일종의 향수일까. 평생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는 걸 오이카와는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는 고등학교 졸업 직전의 나날들이 그랬다. 그때의 시간들은 오이카와가 기억하는 어떤 시간보다도 명료했다. 슬퍼서 울고 기뻐서 웃었던 나날들. 차마 언어로 짓지 못했던 얽히고설킨 감정들이 거기 머물러있었다. 2년 전, 오이카와는 당장 그날 보고싶은 사람이 있어 수험을 치르자마자 기차역으로 달려갔었다. 센다이에는 마찬가지로 그를 보고싶어 하는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없을 것처럼 절대적으로 느껴졌던 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놀라울 만큼 서투르고 어설펐던 시절. 그러나 그때에는 매 순간이 더없이 진심이었다. 오이카와는 센다이로 돌아가던 날의 설레는 공기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창틀에 팔을 받치고 턱을 괴었다. 며칠 전 우시지마가 짤막한 메시지를 보냈다.
[미야기로 돌아가.]
그리고 오이카와는 미야기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미야기는 여전했다. 타케루는 쑥쑥 자라 배구공을 옆구리에 끼고 학교를 오가는 배구 유망주가 되었고, 아오바죠사이는 현내 4강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이곳에서 배구를 하던 시절은 과거로 흘러갔고 그때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를 찾아갔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오이카와는 그가 거쳐온 과거의 흔적을 들춰볼 수 있었다. 아오바죠사이. 시라토리자와. 카라스노. 인터하이와 봄고로 인해 울고웃었던 시절. 배구를 싫어하게 될까봐 끔찍하게 두려웠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여전히, 오이카와 토오루의 인생에 인터하이는 다시없다. 봄고도 다시없다. 고교 마지막 계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혹독했던 사실들은 그러나 오이카와의 추억이 되었다. 그에겐 다른 세상이 시작되었으므로.
아오바죠사이 인근을 한 바퀴 돌고,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공원으로 향했다. 학창시절 로드워크 코스로 자주 돌던 공원이었다. 이 공원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고등학교 졸업 직전에 우시지마와 들렀던 것이었다. 싸리눈이 내리다가 멎은 날이었다. 이곳에서 우시지마와 확인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오이카와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생각하면 낯이 뜨거워지는 일이었다. 그는 애꿎은 돌멩이를 걷어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다 우시와카는.
아무리 운동하기 바빠도 그렇지 이렇게 데면데면해질 수가 있을까. 2년간 우시지마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완전히 남남이 된 것만 같았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날, 우시지마가 오이카와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얼굴로 입까지 맞췄으면 말 다한 것 아닐까. 서로의 단단한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생각한다면, 오이카와나 우시지마나 믿을 수 없을 만큼 순진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 겨울날 그들은 한참을 입맞추고 있었다. 입술을 뗀 후에도,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한참을 부둥켜안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어깨에 얼굴을 받치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토오루, 토오루라고 부르고 싶었어.’
그 고백의 말과 터질 것 같던 박동소리까지 오이카와는 전부 기억하는데 말이다. 그들은 그 길로 헤어져서는 우시지마가 출국하기 전 한번 통화했을 뿐,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었다. 2년간, 오이카와는 거의 뉴스를 통해서 우시지마의 소식을 접했다. 이따금씩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그렇게 건조할 수가 없었다. 잘 지내냐, 나는 여기에서 어떤 훈련을 받고 있다는 얘기들뿐.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와 연인이 된다거나 서로 만나러 가는 일처럼 거창한 걸 바라지 않았다. 그들에겐 프로 배구선수가 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므로. 하지만 적어도 연락은 계속해도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었다. 우시지마는 그날을 기점으로 혼자서 관계를 정리한 게 아닐까. 우시지마에겐 어땠을지 모르지만, 그날은 오이카와에겐 짝사랑이 시작되던 날이기도 했다. 6년이나 우시지마를 외면해온 대가가 이런 걸까. 오이카와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럴수록 우시지마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우시지마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을지. 지척에 두고도 다가가지 못했던 우시지마의 심정을. 미처 언급되지 못한 그의 진심을 오이카와는 상상만 할 뿐이었다. 가끔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보고 싶어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오이카와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들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넌 배구 말고는 관심있는 게 없어?
오이카와는 팀의 흐름을 책임지는 세터였지만 체육관 바깥에선 아니었다. 세상의 흐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자신만의 세계에, 배구의 세계에만 몰두해있었다.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오이카와의 눈물겨운 노력들은 오로지 본인만 아는 비밀이었다. 오이카와는 손을 더 깊이 찔러넣으며 다시 돌멩이를 걷어찼다. 돌멩이는 저 앞으로 튀어,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의 정강이에 부딪혔다.
“오이카와 토오루.”
급히 부르는 이름에 오이카와가 고개를 들었다. 반사적으로 사과하려던 그는 입을 딱 다물었다.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가 이래. 뭐 이런 경우가 있어.
“.........”
우시지마 와카토시였다. 여전히 미야기에 살던 소년처럼 여기에서 오이카와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부가 그을리고 전체적인 인상이 더 강인해졌을 뿐, 우시지마는 여전히 그다웠다. 오이카와는 주머니에 양 손을 넣은 채로 우시지마를 노려보았다. 우시지마는 벌떡 일어서서 그에게 다가왔고, 오이카와는 한 걸음 물러섰다.
“진짜 너무한 거 아냐? 다짜고짜 미야기로 돌아온다더니 이게 뭐야.”
“오이카와 나는,”
“변명은 필요없어.”
우시지마가 한 걸음 앞에 서 있었다. 흐트러진 얼굴에는 당황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오이카와는 정신없이 우시지마를 쳐다보는 한편 자신이 이토록 침착하게 화낼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놀라워하고 있었다. 우시지마가 바로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아서일까.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만난다면 너는 어떻게 연락도 안 할 수 있냐고 비난을 퍼부으리라 마음먹었었다.
“우시와카 너는...”
그러나 그의 이름을 부르는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어 얼굴을 가리려는데 우시지마가 손목을 붙잡았다. 오이카와가 기억하는 그대로. 그때의 그 차가운 온도 그대로였다. 오이카와가 당황한 틈을 타서 우시지마가 몸을 덥석 안았다. 오이카와가 좀 버둥거렸지만 우시지마는 두른 팔에 힘을 놓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항복할 수밖에 없는 아주 다정한 힘으로. 오이카와는 순식간에 힘이 죽 빠지는 것을 느끼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우시지마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울렸다.
“네 목소리... 듣고 싶었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단단한 몸뚱이도, 낮은 목소리와 무뚝뚝한 문장도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이질감을 느끼며 그의 팔뚝을 밀었다. 상체를 조금 밀어내자 우시지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예의 그 눈이었다. 오이카와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그래서 오이카와가 함몰될 수밖에 없었던 열렬한 눈. 다시금 울컥했다. 오이카와는 양 손으로 우시지마의 뺨을 문질렀다. 그리고 손의 감각이 말해주는 것을 그대로 발음했다.
“......오래 기다렸구나, 우시와카.”
깨달음이 천천히 번졌다.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있어서 현실감각이 둔해졌는지 몰라도, 이제야 실감이 났다. 우시지마 와카토시가 여기에 있었다. 파문처럼 번지는 감정 속에서 오이카와는 빙그레 웃었다.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감정이 새어나오자 맘껏 웃고 싶어졌다. 오이카와가 우시지마를 만나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우시지마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2년 전 그때처럼,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에게 키스했다. 우시지마는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지 으윽 하는 신음을 내었다. 개의치 않고 오이카와는 깊이 입술을 맞물렸다. 이 상황이 우시지마에게도 얼마나 낯선지, 한편으로 그가 이 상황을 얼마나 고대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벌어진 입으로 혀가 밀고 들어오자 이번엔 오이카와가 놀랐다. 메마른 입안이 금세 뿌듯해졌다. 우시지마가 이런 걸 배워올 정도라면, 확실히 2년은 긴 시간이었다. 마침내 오이카와는 자신의 짝사랑이 끝났다는 걸 느꼈다. 하나의 세계가 지금 막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있다. 그들의 노력이 빚어낼 결과들이 기다리고 있다. 함께 있는 일이 좀 더 당연해질 것이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오이카와는 늘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곧 라인 안쪽에 나란히 설 수 있겠지. 네트를 향하여 나란히 팔을 뻗고, 나는 너에게 볼을 토스해주겠지. 우리는 바람이 한 방향으로 불듯이 감정의 결을 나란히 할 것이다. 이 기류를 타고 좀 더 흘러가면. 입술이 떨어지고 둘은 모자란 숨을 헐떡였다. 상기된 뺨과 젖은 입술과 서로밖에 응시하지 않는 눈동자를 그들은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우시지마가 오이카와의 뺨을 매만졌다. 오이카와는 두서없이 말을 터뜨렸다.
“우리 마지막으로 봤던 날 있잖아. 나 그때 되게 설렜거든. 이 말 해주고 싶었어.”
“......”
“그때 마음먹었어. 너랑 배구하고 싶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오이카와가 고백했다. 우시지마는 눈을 감으며 웃었다. 가만히 웃을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에게 이마를 맞대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다시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팔은 여전히 서로를 안고 있는 채였다. 이번에는 아쉽지 않을 만큼 끌어안고 있을 작정이었다. 오이카와는 이제 우시지마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더는 피할 필요도, 부정할 필요도 없는 여전한 진심. 오이카와는 친근한 애정을 담아 우시지마를 향해 씩 웃었다. 여기 오이카와가 있었다. 우시지마가 있었다. 두 사람의 세계가 합쳐지는 바로 그 순간에. 그리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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