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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바람이 분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은 땅 위를 맹렬히 건조시킨다. 물기를 온통 빼앗긴 땅은 뜨겁게 작열하고 공기중엔 모래먼지가 부유한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내장까지 델 것 같은 온도다. 이따금씩 열풍이 불어오면 눈을 감고 얼굴에 천을 둘러 몸을 옹송그려야 한다. 거대한 모래바람 앞에서 인간은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막과 인접해있는 이 도시엔 하루에도 수차례씩 열풍이 분다. 끝없이 불어오는 모래바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대도 인간은 이 열풍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럴 것이, 이곳에서 인간은 너무나 보잘것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사막이 이곳에 있다. 사막의 남북으로는 장대하고 드높은 산맥이 벽처럼 둘러져있어 출입구란 동쪽이나 서쪽 끝밖에 없다. 정중앙으로 가로지르고자 한다면 사막의 중간에서 길을 잃어 백골로 발견되기 일쑤다. 사막의 이름은 현지 방언으로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땅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이 거대한 사막을 정복할 수 없으리란 진리가 사막의 이름에 깃들어있는 것이다. 끝없는 바다처럼 펼쳐져있는 사막에는 가로지르거나 미아가 된 사람만 있을 뿐, 정복자는 아무도 없다. 사막을 이해할 수 있고 견딜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인간은 길을 개척했다. 사막을 남북으로 에워싼 산맥 아래 지하수가 솟는 곳에 도시가 점점이 발달했고, 인간은 포진해있는 거점도시들을 한 선으로 이어 길로 만들었다. 길은 사막의 북쪽과 남쪽에 각각 하나씩 존재한다. 사막이 행려자에게 허락하는 것은 그 실처럼 가느다란 선뿐이다. 따라서 사막을 건너고자 하는 이는 길목에서 방향을 선택해 횡단해야만 한다. 북쪽길로 갈 것인지 남쪽길로 갈 것인지.
선처럼 이은 길은 대륙의 동서로 뻗어있다. 이 길을 통해 황제의 나라에서 직조한 비단들이 운반되면서 비단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비단길의 한가운데는 웅대한 사막이 버티고 있고, 사막의 동쪽 끝과 서쪽 끝, 길이 갈라지고 합쳐지는 곳에 각각 커다란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사람과 수레와 역사가 왕래한다. 세상 만물이 한데 섞이는 도시는 누구나 그 화려함에 도취되도록 한다. 이 도시에도 그러나 열풍은 어김없이 분다. 목숨이 붙어있는 것이든 붙어있지 않은 것이든, 형태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사막은 모두 모래바람으로 덮어버릴 수 있었다. 사막의 바람은 커다란 암석도 풍화시키는 위력이 있어, 일찍이 이곳에는 모래바람에 장사지내는 풍습이 존재했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면 인간은 단지 몸을 웅크리고 인내해야 한다. 사막의 위용 앞에서 운명 같은 것은 너무나 하잘것없는 것이다. 열풍의 한가운데 휩싸여있노라면. 여기는 바람의 왕국이다.
멀리서 모래바람이 소용돌이치며 불어오고 있었다.
열풍은 늘 한결같았다. 뜨겁고 건조하고, 살갗을 스치면 쓰라리기까지 한 바람. 모래입자가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보석처럼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에 취했다간 폐를 다치기 십상이었다. 우시지마는 서둘러 좁은 골목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머리에 둘렀던 천을 바싹 끌어당겨 호흡기를 막았다. 바람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시장 사람들이 동요하는 소리가 났다. 우시지마는 숨을 가득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매서운 열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는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기분을 느꼈다.
우시지마의 도시는 거대한 사막의 서쪽 끝에 위치해있어 사막의 출입구 역할을 맡고 있다. 이곳에는 풍요로운 오아시스가 있어 행려자의 좋은 쉼터가 되는 동시에 교역의 중심지였다. 동과 서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세상 곳곳의 진귀한 물건들을 거래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은 모두 구할 수 있는 도시. 상인들의 도시. 이 도시의 별칭이었다.
우시지마의 집안은 이곳에서 거상으로 이름을 알렸다. 우시지마 상단은 사막지대를 가로질러 동서 세계를 왕래하며 물건을 거래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우시지마 상단에 의뢰해서 얻지 못하는 물건은 없었다. 우시지마牛島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이 도시 토착민이 아니었다. 원래는 대륙의 동쪽 정주국가의 백성이었으나 이쪽으로 이주해와 자수성가한 경우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먼 땅에서 이주해온 연유를 궁금해 하곤 했지만, 연유라고 해봐야 결국 사막의 모래알같은 사연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원체 다양한 인종과 출신성분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도시이므로. 도시엔 늘 이국의 행려자들이 드나들었다. 우시지마 상단은 여러 언어에 능통했고 의뢰받는 사람들에게서 신망을 얻었다. 우시지마가 일대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으로 족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자유분방한 도시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랐다. 그의 뇌리에 남아있는 최초의 기억은, 아주 어릴 적 아버지 등에 업혀 할아버지와 함께 사막을 횡단하던 기억이다. 사막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을지언정 우시지마는 자신의 영혼이 바람과 모래에 속해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쪽 나라로 원정을 가서 의뢰인을 만난 후 몇 달 만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피부가 검은 자들의 나라였고, 황금장식이 유행하는 도시였다. 우시지마의 의뢰인은 그 나라의 대부호로, 접시에 안료로 쓸 순수한 코발트를 요구했다. 그가 원하는 질과 양 만큼의 코발트 안료를 구하기 위해 우시지마는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마침내 그것을 부호에게 전하고 오는 길이었다. 오래 걸린 일이었던 만큼 의뢰인이 파안하는 것을 보자 그간의 고생이 녹는 듯했었다. 성공적으로 의뢰를 처리하고, 다시 우시지마는 오아시스로 돌아왔다. 늘 그랬듯 도시엔 행상들이 가득했다.
열풍은 삽시간에 지나갔다. 모래폭풍이 사람들을 덮치던 그 순간은 말소가 일순 멎고 웅웅거리는 바람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바람이 저편으로 건너가자 사람들은 한바탕 콜록거리며 기침을 터뜨렸다. 시장엔 다시 왁자한 활기가 넘쳐났다.
우시지마는 좁은 골목에서 나와 시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그가 돌아왔음을 알아보고 알은체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우시지마는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시장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우시지마를 보지 못했는지 그의 허벅지에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우시지마의 발치에 나동그라진 두 여자아이는 울먹이기부터 했다.
“울지 마라. 괜찮아.”
우시지마는 자리에 쪼그려 앉아 아이들이 떨어뜨린 구슬을 친히 주워주었다. 염료를 섞어 알록달록하게 가공한 유리구슬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다. 우시지마는 그것을 아이들 눈높이로 들어보였다.
“흔한 빛깔은 아닌데.”
우시지마가 중얼거렸다. 아이들의 가무잡잡한 얼굴에 파란 눈동자가 어리둥절했다. 아이들이 아예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우시지마는 아이들의 손바닥 위에 구슬을 올려주었다. 아이들은 물건을 돌려받자 안심한 기색이었다.
“어디서 났는지 물어봐도 될까?”
“저기서 만난 오빠가 줬어요.”
둘 중에 머리가 곱슬거리는 아이가 대답했다. 아이는 시장 한복판을 눈짓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대강 납득하려는데 아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저기, 저 오빠요." 하고 손수 가리켜주었다. 아이의 손가락을 유심히 따라가보니 과연 행상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우시지마는 금방 그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사막의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낯이 너무 하얀 것이다. 사막지대에서 그런 피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분명 여행자겠지. 우시지마는 조금 웃으며 아이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 가서 놀거라.”
그러자 아이들은 파안해서 다시 시장 저편으로 뛰어갔다. 아이들의 활기 넘치는 웃음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우시지마는 잠시 그 자리에서 얼굴 하얀 남자를 지켜보았다. 물건값을 흥정하는 모양인데 잘 되지 않는가 보았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그가 이곳 현지어에 젬병이라는 사실은 똑똑히 보였다. 상인은 날파리를 쫓듯 남자의 얼굴 앞에 손사래까지 쳤다. 남자가 상인과의 손짓 발짓에 정신 팔려 있는 사이, 좀도둑이 다가와 그의 바지춤에 달려있는 주머니를 떼어갔다.
“.........”
저걸 모를 수가 있나. 우시지마는 그 광경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좀도둑은 나는 걸음으로 우시지마 곁을 훌쩍 지나갔다. 남자가 행낭을 통째로 내어주고 사려고 했던 건, 양가죽 물주머니였다. 물을 시원한 온도로 보존해주는 사막 여행자의 필수품이었다.
그 얼굴 하얀 남자를 다시 만난 건 오래지 않아서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관심도 없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니 좀도둑이 그를 털어가는데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시지마가 복귀해서 하루를 꼬박 쉬고, 이틀째 오후에 일을 보러 나갔을 때 그 남자와 다시 마주쳤다. 그는 한쪽 길가에 쪼그려 앉아 양 무릎을 안은 자세로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허리가 다 꼬부라진 노파가 그에게 새된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헌데 이상했다. 노파가 그의 얼굴 앞에 손짓까지 해가며 말하는데도 남자는 미동도 않는 것이다.
“곧 있으면 귀인이 나타난다니까? 이런 데 찌그러져 있지 말구!”
얼핏 듣기론 노파가 남자의 점을 봐준 모양이었다. 노파가 진짜 점쟁이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남자는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 게 분명했다. 그러니 복채도 줄 수 없는 거겠지. 노파는 그러나 현명했다. 남자와 씨름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노파는 마지막으로 삿대질을 하곤 지팡이를 짚고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자는 저에게 한바탕 열을 내고 사라지는 사람에게도 눈길 한 조각 줄 줄을 몰랐다. 남자의 얼굴엔 그늘만 그득했다. 수심에 잠긴 사람의 얼굴. 그 얼굴에 드리운 무기력이 어찌나 노골적이었던지, 우시지마는 그가 거쳐온 이력을 읽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우시지마는 하던 일도 멈추고 그 남자를 뚫어져라 관찰했다. 나이는 우시지마와 엇비슷한 또래로 보인다. 흉 없이 반듯하고 선명한 이목구비와 그가 몸에 두른 옷감을 살펴보건대 귀공자처럼 자란 청년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지금 그의 얼굴에는 고생깨나 한 흔적이 여실했다. 눈가가 새까맣고 얼굴에 피곤이 가득한 것이다. 빨갛게 달아오른 볼은 혈기가 돌 때의 그 붉은 빛이 아니었다. 어쩌면 열이 올라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시지마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그를 툭툭 칠 때마다 몸은 형편없이 휘청휘청했다. 휴식이 간절해 보이는 외양이었다.
나쁜 것은, 그에게선 우울한 기색마저 들여다보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사람을 쳐다보는 눈을 보면 알았다. 멀어지는 열풍을 뒤늦게 구경하듯 관심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눈은 풍경을 보고만 있지 아무런 소회가 없는 듯했다.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는 듯, 될 대로 되라는 듯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우시지마는 그가 그저께 물주머니 하나를 사는 데 진땀을 빼고 물건을 도둑맞았던 일을 떠올렸다. 지금쯤이면 그는 향수병이라도 앓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랬다간 거리에서 까딱 굶어죽기 십상이었다. 우시지마는 사막도시를 만만하게 여긴 객들이 어이없이 목숨을 잃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탈수증에 걸린 줄도 모르고, 향수병에 걸린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방치했다가 죽음까지 이르는 길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자유로운 이방인의 도시라 해도 동쪽 끝에서 온 손님은 귀한 편이었다. 남자는 눈에 띄는 외양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의 주의도 끌지 못했다. 비단 그가 건물의 그늘 속에 죽은 듯 들어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우시지마 외에는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시지마는 세상의 틈새에 숨어있는 비밀을 저 혼자 엿보는 기분이었다.
우시지마가 딴생각에 함몰되었던 것도 잠시, 상단의 수레가 물건을 싣고 들어왔다. 물건을 싣고 내리는 동안 우시지마는 조금씩 그 남자를 곁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자꾸만 신경이 그쪽으로 갔다.
그러니까 이건 죄책감 때문이다.
결국 남자에게 저벅저벅 걸어가며 우시지마는 생각했다.
해가 기울도록 남자는 그 자리에서 꼼짝할 줄을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팔에 머리를 묻고 미동도 않았는데, 그걸 알아차렸을 때만 해도 우시지마는 그가 잠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꼼짝않고 있을 수는 없었다. 기절한 게 아니라면. 그저께 남자가 도둑맞았던 것은 노잣돈이 아니었을까. 남자는 그 순간부터 빈털터리가 되어 쫄쫄 굶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좀도둑이 웃지 못하도록 말렸어야 했을까. 사막지대에선 아무리 사소한 물건일지라도 생존과 직결되어있을 수 있었다. 일하던 것도 멈추고 남자를 유심히 뜯어보노라니 덜컥 걱정이 들었고, 우시지마는 결국 그에게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조심스레 그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 뼈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어깨를 살살 흔드니, 남자의 고개가 맥없이 흔들렸다.
“이런...”
당혹감과 함께 남자의 몸이 우시지마에게로 와르르 쏟아졌다.
부디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남자를 등에 업고 상단으로 들어오며 우시지마는 생각했다. 남자가 앉아있던 곳에서 우시지마의 상단은 겨우 몇 걸음 떨어져있었다고 해도, 그래서 우시지마가 성인 남자를 업느라 힘을 뺄 일은 없었다고 해도, 남자의 몸은 지나치게 가벼웠다. 등에 둘러메는 일이 쉽더니 우시지마의 등으로 남자의 가슴뼈가 다 느껴지는 것이다. 그 빈약한 몸뚱이는 전적으로 우시지마의 탓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우시지마가 보탠 몫이 있었다. 우시지마는 작게 후회하며 남자를 고쳐 업었다.
우시지마의 상단은 널찍한 여관까지 운영하고 있어 상인들이 짐을 맡겨놓고 여러 날씩 쉬어가기에 좋았다. 우시지마는 정원이 시원하게 내다보이는 객실을 골라 들어갔다. 사환을 불러 물과 먹을 것을 가져오라는 주문부터 했다. 그리고 등에 업은 남자를 조심스레 내렸다. 가까이서 보니 바로 얼마 전 사막을 횡단해온 사람의 몸이라는 사실이 명료하게 알아졌다. 우시지마는 사막이 남겨놓은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하얀 얼굴에 이마와 콧등과 광대뼈만 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영락없는 사막 볕의 흔적인 것이다. 전신은 건조하고 손등의 피부가 까칠하게 일어나있었다. 무엇보다 온몸에 열이 들끓었다. 남자가 사막을 건너온 게 정말로 맞다면 이토록 살아있는 건 거의 기적적이라고 우시지마는 생각했다. 한마디로 남자는 사막의 신열에 앓고 있었다.
남자의 벌어진 입술로 손가락을 대자 열풍처럼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왜 진작 알아보지 못했을까. 죽어가는 사람을. 우시지마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열을 제때에 처치하지 못해서, 열사병에 내장이 익어 죽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다. 그는 다시 사환을 불렀다.
“가서 의원을 모셔와야겠다. 열사병 환자가 있다고 전해라.”
사환은 우시지마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알아채곤 쏜살같이 여관을 나섰다.
안전한 곳에 들어왔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걸까. 남자의 몸에서 열이 맘껏 활개치기 시작했다. 이제 그에게선 우울하게 눈을 끔벅이며 거리를 내다보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남자는 열에 들떠 정신없이 헉헉거렸다. 마냥 손 놓고 의원만 기다리고 있을 순 없었다. 우시지마는 다른 사환에게 찬물에 적신 수건과 식수를 가져오라고 하고 남자의 여행망토를 벗겼다. 목에 두르고 있던 천, 허리춤과 품에 매달아둔 주머니들을 하나둘 풀고 상하의를 모두 벗겨냈다. 우시지마의 예상대로 비쩍 마른 팔다리가 드러났다. 물주전자를 기울여 얕은 접시에 물을 조금 받았다. 우시지마는 남자의 머리를 받쳐들고 접시를 입술로 기울였으나 물은 남자의 입가를 따라 줄줄 샜다. 사람이 물조차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는 판에 앞뒤 가릴 것이 없었다. 우시지마는 물주전자를 자신의 입으로 기울여 물을 머금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남자와 입술을 맞췄다. 우시지마가 조금 입술 틈새를 벌리자 물이 비로소 남자의 입안으로 흘러들었다. 우시지마는 남자의 머리를 받치지 않은 손으로는 그의 목을 짚고 있었고, 그의 목울대가 울컥 오르내리는 것이 느껴지자 좀 안심할 수 있었다. 물이 남자의 목으로 넘어간 것이다. 우시지마는 다시 물을 머금고 남자의 입안에 흘려주었다. 다시 남자의 목울대가 꿀꺽하는 것을 느끼곤 다시 한 모금 더. 까끌까끌한 입술이 수차례 닿았다가 떨어졌다. 사이에 모래알이 끼어있는 게 아닌가 생각될 만큼 입술은 거칠었다. 물을 머금고 입맞추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우시지마는 멍하니 생각했다. 남자가 좀 정신을 차리면 갈라진 입술과 피부에 연고를 발라주어야겠다고. 온몸에 균열이 가 있는 사람이었다.
남자의 목을 축여놓고,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전신을 닦고 있었더니 의원이 도착했다. 의원은 왕진가방을 턱 내려놓으며 물었다.
“어디서 오셨나? 온몸에 열이 끓는데.”
“사막에서 온 게 아닐까 합니다.”
“그냥 보기에도 사막 체질이 아닌데...”
의원은 남자의 이마를 짚어보고, 눈꺼풀을 뒤집어보고 손목의 맥을 짚더니 가방을 뒤적거렸다. 굳이 진단할 필요도 없이 열사병이었다. 의원은 남자에게 해열제부터 먹인 뒤, 우시지마에게 좀 이따 약방에 들러 약을 받아가라고 말했다.
“그늘에서 며칠 푹 쉬면 괜찮아지겠지. 방금 막 사막을 건너온 모양인데 그냥 쉬게 하라구. 만에 하나 열이 또 오르면 그때는 온몸을 찬걸로 닦아주고.”
기실 해열제를 먹인 것으로 의원의 소임은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의원은 우시지마에게 열사병 환자가 조심해야 할 것들을 줄줄이 일러준 뒤 뒷짐을 지고 돌아갔다.
우시지마는 남자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해열제가 듣기 시작하는지 남자는 한결 편안하게 잠에 빠진 듯했다. 아까는 이마와 뺨이 타는 것처럼 새빨갛더니 이제는 은은한 붉은 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신열이 해소되고 있는 것이다. 우시지마는 다시 물수건으로 남자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볼품없는 몸이었다. 원래 이렇게 마른 몸이었을까, 사막을 건너오면서 살을 잃은 것일까. 아직 우시지마는 상상의 힘으로 남자를 이해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룻밤을 꼬박 지내고, 날이 밝아서야 남자는 스르르 눈을 떴다. 남자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사방으로 눈을 돌렸고, 곧 우시지마와 눈이 마주쳤다.
“어?”
남자가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남자는 한쪽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고는 우시지마와, 자신의 몸에 덮인 얇은 이불과 방안의 정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흙으로 벽을 세운 방은 퍽 시원한 온도였고, 창문을 가린 발은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렸다. 그리고 멀지않은 곳에서 우시지마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가 얼떨떨해 하는 것이 당연했다. 거리에서 기절했는데 눈을 떠 보니 안락한 실내에 발 뻗고 누워있었으니까.
“우리나라 사람?”
조심스레 묻는 목소리가 그 외모만큼 나긋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로 말하는 언어는, 한때 우시지마의 모어였던 언어였다. 우시지마는 아직 그 언어를 기억하고 있었다. 모래와 바람의 도시에서 그 언어를 쓸 일은 거의 없었지만 기억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었다. 우시지마는 남자의 얼굴을 구석구석 살피며 대답했다.
“그럴지도.”
우시지마가 분명한 발음으로 말했다. 그랬더니 남자는 벌떡 일어나 앉아, 입을 딱 벌렸다. 그는 감격까지 하기라도 한 듯 눈망울을 커다랗게 떴다.
“네가 나를 여기 데려온 거야?”
“내가 너를 여기에 데려왔다. 여기는 우리 집이다. 어제 너와 처음 만났고.”
거짓말을 조금 섞어 설명한다. 우시지마의 말은 남자에게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확신을 들게 해주었는지, 남자는 양 손에 자신의 얼굴을 푹 묻었다. 손바닥 틈새로 남자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세상에, 말이 통하잖아......”
“너는 어디서 왔나?”
“......몇 달 전 나라를 떠나온 참이야. 여기 온 지는 얼마 안 돼. 사막을 건너왔는데, 말로만 들었지 그렇게 끔찍한 곳일 줄은 몰랐어. 나는 진짜 죽는 줄...”
“잠깐만. 천천히 말해줘. 나는 우리말을 잘 모른다.”
우시지마로서도 동향 사람을 만나는 것은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제는 가족끼리도 여기 말로 대화하고 있었고, 우시지마가 모어를 상기하는 데는 시간이 다소 필요했다. 그때까지 얼굴을 문지르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반짝 들었다. 비로소 우시지마는 그의 눈동자가 잘 말린 찻잎색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간은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남자는 오늘에야 우시지마를 처음 만났다.
“왜? 우리나라 사람 아니야?”
“...맞는데, 나는 대부분 이곳에서 살았다. 옛날에 아버지와 여기로 왔어. 그 이전의 기억은 몰라.”
“......아. 그거 참... 특이하네.”
남자가 입을 헤벌리며 대꾸했다. 그는 더욱 호기심이 동한 눈으로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듣자하니 오래 전 여기로 이주했다는 뜻 같은데 맞지? 왜 여기로 왔어? 우리나라 사람이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어. 그렇잖아. 우리나란 섬나라고.”
“섬?”
“...섬이 뭔지도 모르는 거야? 바다 위에 떠 있는 땅 말이야.”
“아. 아버지에게 들었다.”
이번엔 우시지마가 입을 헤벌리며 대꾸했다. 남자는 다시 방안을 휘 둘러보고, 창밖의 정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우시지마의 여관은 사면이 복도형으로 연결되어 있고 정 가운데는 작은 정원을 만들어놓은 형태다. 거기로 빛과 바람이 들어와 자그마한 안식을 준다. 어느 방에서 묵든 작은 정원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다.
“여기가 어디라고? 꼭 객잔 같은데. 난 정말 아무것도 몰라. 사막을 건너왔다는 것밖에는...”
“여기는 사막의 처음이다. 그리고 사막의 끝이다. 여기는 우리 집안 소유고.”
“.........”
남자는 우시지마를 향해 고개를 돌리곤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 말뜻을 이해하는 데엔 시간이 좀 걸렸다. 남자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우시지마의 말을 이해했는지 어쨌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우시지마는 그가 이해했다고 믿기로 했다. 이윽고 남자는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아픈가?”
“배고파서 구역질이 나......”
그건 배고프다는 신호일 것이다. 우시지마는 우선 물주전자를 기울여 물그릇을 건네주었다.
“이것부터. 천천히.”
남자는 커다랗게 눈을 뜨며 그릇을 덥석 받아들었다. 그리고 한두 모금 마신 뒤, 멍한 얼굴로 그릇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우시지마는 빈 그릇을 돌려받으며 탁상에 두었던 과일그릇을 건네었다. 대추야자 열매였다. 남자는 반색을 하며 열매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몸 상태가 확실히 전날보다 호전되었다. 이제 그의 몸에 열기란 뺨과 콧등 정도에만 고여있었다. 그리고 그 열은 태양에 그을린 흔적이다. 피부가 아주 노릇하게 익어있는 것이다. 남자와 같은 동방의 객들은 피부를 그을려도 몇 달포 지나면 원래의 색을 회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자의 콧등과 광대뼈 역시 연한 갈색으로 변했다가 원래의 빛을 회복하겠지. 남자는 무구한 얼굴로 천천히 대추야자를 씹었다. 지난밤 자신이 얼마나 앓았는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우시지마는 마침내 한시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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