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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빠져나오면 끝인 줄 알았는데 돈까지 도둑맞았지 뭐야. 며칠을 굶었어.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
남자가 와르르 말을 쏟아냈다. 사막, 나오다, 돈, 죽다. 남자의 안심하는 얼굴과 단어들을 조합하건대 아마도 사막을 나왔더니 돈이 없어 죽을 뻔했다는 뜻일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양심이 쿡쿡 찔리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쉬고 있어라. 먹을 것을 주겠다.”
“자, 잠깐만. 나 돈이 하나도 없는데.”
“걱정 마라. 여긴 상인의 집이다.”
“...나한테 왜 잘해주는 거야?”
남자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드리웠다. 목소리의 절반은 당혹, 나머지 절반은 불신이 차지했다. 우시지마는 그 반응을 이해했다. 세상에 무조건적으로 친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단 말인가. 남자가 자신을 사기꾼으로 오해할 가능성도 다분했다. 우시지마는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
내가 너를 죽일 뻔 했다고 이실직고할 필요까진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는 아직 의아해하는 남자를 방에 두고 주방으로 향했다.
우시지마는 남자가 대추야자를 몇 알 더 집어먹도록 한 뒤 소금간을 한 쌀죽을 내어주었다. 사막의 동쪽은 쌀이 주식인 나라가 대다수고 우시지마의 아버지도 그것을 즐겨 드셨다.
“살 것 같아... 정말 맛있어.”
우시지마의 선택은 아주 탁월했는지, 남자는 감격에 겨워하며 쌀죽을 떠먹었다. 많이 먹지는 못했다. 한참 비어있던 속을 한 번에 채울 수는 없었으므로. 입에 음식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남자의 허기를 절반은 채워주었다. 먹은 음식의 양과 관계없이 남자의 안색이 한결 맑아졌다.
남자는 꽤나 넉살좋은 성격이었다. 우시지마는 곧 남자가 지닌 이력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동방의 섬나라를 떠나 이곳까지 당도하게 된 곡절은 아마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모자랄 것이다. 남자는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듯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어조가 일정했고, 우시지마가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 천천히 발음되었다. 우시지마는 그의 입 모양을 주시하며 대화를 따라가려 했다. 남자는 어려운 단어를 말했다 싶으면 손짓을 해서 부연설명했다. 서쪽이란 단어를 설명할 때에는 허공에다 커다란 덩어리를 그리고 좌우를 가리키며 “여기가 동쪽, 여기가 서쪽”하는 식으로. 우시지마가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야 남자는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아무튼, 대륙까지 오는 건 문제없었단 말이야. 그 다음부터 객지생활이 시작됐지. 말이 안 통해서 애를 먹었어. 나는 그 나라 글을 읽고 쓸 줄만 알았지, 발음할 줄은 몰랐으니까. 나는 종이에다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식으로 대화했어. 수도에서 몇 주일을 머물면서 사막을 건너갈 일행을 수소문했어. 거기서 바로 사막으로 간다는 사람은 없었지. 그래서 행상의 짐마차를 얻어타면서 겨우겨우 대륙을 건넜어. 그리고 사막의 입구에서 대상隊商들과 합류했지.”
“대상이 뭐지?”
“여기 말로 카라반이라고 하던가? 낙타를 몰고 다니면서 교역하는 사람들 있잖아. 사막의 상인들. 그들에게 사례금은 지불했다지만 거의 도박이나 마찬가지였지. 처음 보는 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길을 맡기겠냔 말이야. 나는 늘 죽음을 각오했어.”
“왜 사막인가?”
“왜 사막을 선택했느냐고? 그냥,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평생 가보지 못했을 곳으로 가고 싶었거든. 섬나라엔 사막이 없으니까.”
마지막 문장을 알아듣고 우시지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설명을 이었다.
“사막의 모래는 정말 뜨겁더라. 불에 타서 죽는 고통이 가장 끔찍하다고 하잖아. 그게 이해가 되더라구. 머리는 뜨거워 죽겠지, 목은 마르지, 모래는 끝도 없지...... 카라반은 사막을 건너며 사는 사람들이니까 익숙하다 치지만 나는 그만큼 뜨거운 건 처음이었거든. 섬의 여름도 아주 더운데, 비교가 안 되더라. 볕에 타서 죽겠다고 생각했어. 살이 다 벗겨지는 줄 알았지. 그런데 밤이면 어떻게 그렇게 추워지는지.”
“사막의 밤은 조심해야 한다. 옷을 입고 불을 피워야 해.”
“그래, 난 그런 줄도 몰랐지. 밤이 되니 살 만하니까 그냥 드러누워 잤다가 떨면서 깨어나기가 일쑤였어. 울다가 웃는 것도 아니고, 미치는 줄 알았지.”
“그 사막의 이름을 알고 있나?”
“.....뭐랬더라, 타클...라마칸?”
“그래.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어쩐지 끔찍하게 넓더라.”
“처음 들어가서 살아 돌아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용케 살아남았다는 뜻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여기에는 아는 사람이 없나?”
“아무도 없지. 같이 사막을 건너온 사람들도, 잔금을 치르자마자 뿔뿔이 흩어졌어.”
“......”
우시지마는 미간을 조금 좁혔다. 무모해도 이렇게 무모할 수가 있나. 듣자하니 남자는 동방의 섬나라에서 나고 자라 그 밖의 세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섬 바깥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사막을 건너기로 결심했을까. 그야말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막 초행길에 무사히 살아남은 건 거의 기적적이라 해도 좋았다. 남자가 최초로 길을 떠나게 된 경위가 있었을 것이다. 남자를 이곳까지 등떠민 곡절이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오히려 더욱 궁금해졌다. 우시지마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남자는 침대보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온통 낯선 것들뿐이야. 사막에서의 시간도, 지금 이 순간조차도 꿈같이 느껴져.”
목소리는 다분히 감상적이었다. 남자의 시선이 여관방과 사막을 오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장소를 대조하고 있겠지. 우시지마 역시 얼마간 상상할 수 있었다. 남자가 최초로 맞닥뜨렸을 사막의 낮과 사막의 밤. 불처럼 활활 타는 사막의 태양과 시리도록 푸른 사막의 달. 우시지마에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이 남자에겐 무간지옥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나고 자란 자리가 다르므로. 서로의 상식이 판이했으므로. 다시 남자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보니 우리, 통성명도 안 했네. 당신은 뭐라고 부르면 돼?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우시지마. 우시지마라고 불러.”
“나는 오이카와라고 해. 오이, 카와.”
“오이카와.”
최초로 발음해본 남자의 이름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어쩐지 모래알이 든 것처럼 입안이 깔깔했다. 우시지마 일가가 섬나라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언어로 명명된 이름. 우시지마는 그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 입안에서 되뇌어보았지만, 그 이름은 입술을 닫고서는 발음할 수 없었다. 남자에게 적응기가 필요하듯, 우시지마에게도 어느 정도 적응기는 필요했다. 우시지마는 남자가 먹다 만 쌀죽을 가리켰다.
“더 먹을 수 있겠나?”
남자의 시선이 우시지마의 손가락을 따라 그릇에 닿았다.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결국 우시지마가 내어준 쌀죽 한 그릇을 모두 비웠다. 기력을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양이었지만, 기력은 찬찬히 공들여서 회복해야만 했다. 특히 사막을 건너온 직후의 몸이라면 더욱 세심하게 다뤄야 했다. 사막을 자주 건너다니는 사람들도 오아시스 도시에서는 한 달포씩 쉬어가곤 하니까. 우시지마는 나중에 음식을 더 주겠다고 말한 뒤, 남자에게 잠을 자라고 말했다. 남자는 별안간 마구 쏟아지는 잠을 느꼈는지 하품을 했다. 우시지마가 자리를 비켜주려 하자 남자는 침상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더우면 문을 열고 옷을 벗어라.”
“고마워......”
남자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우시지마가 빈 식기를 수습하고 주변을 정돈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완전히 곯아떨어진 듯했다.
해가 저물고 깜깜한 어둠이 드리우도록 남자는 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잠깐 일어나서 뭐라도 먹은 후 다시 자는 게 어떨까 하여 우시지마가 남자를 찾아갔을 때, 우시지마는 곧 그 생각을 취소했다. 그는 자는 얼굴마저 지독하게 고단했던 것이다. 사막을 빠져나온 후로도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귀공자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했을까. 여전히 우시지마는 그 연유가 궁금했다. 우시지마는 방을 나갔다.
다시 우시지마는 남자의 침상에 걸터앉았다. 이번에는 손에 연고를 든 채였다. 우시지마는 남자의 자는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머리칼은 남자의 눈동자처럼 다갈색이었다. 따뜻한 색이라고, 우시지마는 생각했다. 살가운 빛깔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힘들어보일까 생각하던 그는 곧 이유를 찾아냈다.
남자는 불안해보였다.
잠든 얼굴이 하나도 편해 보이지가 않았다. 음식을 먹고 안전한 곳에서 여러 시간째 쉬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이토록 불편할 수는 없었다. 인상을 찡그리고 있지 않아도 그 기운이 느껴졌다. 눈가와 입매에 긴장이 가득한 것이다. 어쩌면 그는 사막의 밤으로 돌아가 있는지도 몰랐다. 우시지마는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의 두려움에 관해서라면 아플 만큼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사막을 왕래하는 자이므로. 남자는 어쩌면, 카라반이 그를 사막 한가운데 버리고 훌쩍 떠나버릴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렸을 것이다. 또 어쩌면 모래언덕이 파스스 무너지는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설쳤을 것이다. 사막에서 가장 무서운 건, 활활 타는 해도 시린 달도 아닌, 자기 내면의 고독이다. 시작도 끝도 경계도 알 수 없는 모래의 땅에 오직 홀로 서 있는 기분. 망망한 모래의 땅에 영원히 고립될 거라는,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생사를 모를 거라는, 그리하여 자신의 백골이 모래에서 풍화되리라는 두려움은 여행자를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여전히 우시지마는 상상밖에 할 수 없는, 남자의 개인사.
그만 생각을 갈무리하고 우시지마는 연고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에서 머리칼을 조심스레 걷어냈다. 연고를 조금 덜어 남자의 광대뼈와 콧등에 발랐다. 화상 입은 피부에서 열을 빼고 습기를 보충해주는 연고였다. 우시지마는 남자의 이마와 까칠한 뺨에 연고를 잘 바른 다음, 드러난 팔다리에도 골고루 도포한 후에야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이 남자의 가족이었다면 어떻게 이렇게 무모한 짓을 저질렀느냐고 화를 내었을 것이다.
우시지마는 남자의 머리맡에 난 창문의 발을 시원하게 걷었다. 밖에서 가벼운 바람이 불어왔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온도. 숙면하기에 꼭 알맞은 온도였다. 우시지마는 남자가 잠결에 밀어낸 이불을 그의 배에 덮어주었다. 자칫했다간 배앓이를 할 수도 있으니까. 또한 몸에 무언가 안전하게 둘러쳐진 기분은 그에게 얼마간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침상에서 일어나려던 우시지마는 조금 머뭇거렸다. 남자의 본래 이름이 떠오른 탓이다. 언제까지고 이 사람, 이 남자라고 지칭할 수는 없었다. 엄연한 이름이 있었다.
오이카와라는 이름이었다. 오이카와. 앞으로 우시지마가 닳도록 부르게 될 이름이었다. 한편으로 이 세상에서 우시지마만이 자유롭게 불러줄 이름이었다. 물론 우시지마는 알지 못했다. 이름자의 주인인 오이카와조차, 아직은 상상 못할 일이었다.
달이 세 번 뜨고 세 번 졌다. 이따금씩 열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 시간을 남자는, 오이카와는 오롯이 자거나 먹는 데 썼다. 잠에서 잠시 깨어날 때에 우시지마는 그에게 식사를 가져다주었고 식후에는 차를 마시며 짤막하게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이카와는 스스로도 이토록 마구 쏟아지는 잠에 당황스러워했다. 우시지마는 그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사흘이 지나서야 오이카와는 기운을 차리고 일어날 수 있었다. 거의 해질녘이 되어 있었다. 어김없이 또 하루가 져 있었다. 우시지마가 저녁거리를 들고 그의 방에 찾아갔을 때, 오이카와는 침대에서 일어나 서랍장식을 구경하고 있었다.
“괜찮은가?”
우시지마가 묻자 남자는 허리를 펴고 그를 돌아보았다.
“미안. 매번 신경쓰게 해서.”
“...그 신경쓴다는 말이 뭔지 모르겠군.”
우시지마가 쟁반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폐 끼쳐서 미안하다는 뜻이야. 내가 너를 귀찮게 하잖아.”
“미안? 그러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여긴 여관이다.”
“언젠가 신세를 갚을 수 있으면 좋겠네.”
오이카와는 씩 웃으며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우시지마가 가져온 음식을 관심있게 들여다보았다. 오이카와는 이제 미음과 차로 연명하는 단계를 지나 보통의 식사를 해도 좋은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육류를 먹기에는 여전히 부담스러울 테지만, 고기 소스에 빵을 찍어먹는 건 괜찮을 것이다. 우시지마는 그를 배려해 최대한 자극이 적은 음식을 준비했고, 오이카와도 다행히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닌 듯했다. 어느덧 우시지마의 식사시간도 오이카와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며칠이 지나면서 우시지마는 자신 몫의 식사를 함께 가져오기 시작했다. 오이카와가 저 혼자 식사하는 것을 민망해한 까닭이었다. 오이카와의 눈가에 드리웠던 그늘이 한결 걷혀 있었다. 그예 우시지마는 오이카와가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했다고 판단했고, 한 가지 제안했다.
“저녁을 먹으면 바깥에 나가지 않겠나?”
“바깥?”
오이카와가 반문했다.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넘이가 시작된 시각이었다. 흙으로 세운 집들이 저마다 주홍빛을 덧입었다. 노란 모래바람이 골목을 누볐다.
오이카와에게 이 도시는 혼자 방랑하던 때와는 영 딴판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그때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었는지, 오이카와는 가옥과 길의 형태에도 신기해했다. 우시지마의 여관을 나서면 바로 시장이었다. 크고작은 상단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는 거리. 두 사람은 차양막을 걷고 좌판을 정리하는 행상들을 구경하며 시장길을 걸어나갔다. 오이카와는 그곳에서 거래되는 물건들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그는 특히 도자기에 관심을 보였다.
“도자기는 동방에서만 쓰는 줄 알았어. 여긴 모양도 다양하고 안료도 특이하네. 그치만 굽는 방식이 다른가? 빛깔이 좀 흐린데...”
거의 혼잣말로 오이카와는 중얼거렸다. 우시지마는 그가 구경에 정신이 팔려 인파에 섞이기 전, 그의 옷자락을 쥐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끌려온 오이카와는 곧 다른 것에 관심을 빼앗겼다.
“저기 매달려있는 건 뭐지? 비쩍 마른 개구리를 늘려놓은 것 같아.”
오이카와의 손끝을 따라가보니, 간식거리를 파는 행상이 오이카와에게 꼬치를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도마뱀을 불에 구워 말린 음식이었다.
“먹고 싶은가?”
“저걸 먹는다고?”
오이카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순식간에 급변한 얼굴이 우스웠다.
“어서 가지.”
딴청부릴 시간이 없었다. 우시지마가 걸음을 재촉했다. 나란히 걸으며 그가 느낀 건, 오이카와의 키가 동방계 치곤 크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그는 눈이 가로로 길지도 않았고, 홑꺼풀도 아니었으며 체격이 왜소하지도 않았다. 우시지마가 상상할 수 있었던 동방국 청년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작 우시지마 자신은 오이카와보다 몇 마디나 더 컸지만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동방에 속해있다고 느낀 적 없던 우시지마에겐, 오이카와가 동방의 별종으로 보였다.
시장을 가로질러 마을 어귀로 나가면 오아시스였다. 지하수가 샘솟아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오아시스 인근엔 식생이 분포했다. 그곳에서 나무와 열매가 자랐고, 사람이 모여 군락을 이루고 도시를 이루었다. 오아시스를 둘러싸고 대추야자 나무들이 늘어서있었고, 그 옆에선 밀이 자랐다. 노을이 붉게 내려앉은 오아시스는 장엄하고 자못 성스럽기까지 했다. 사막에서 가장 귀한 물과 나무가 이곳에는 가득했으므로. 오이카와는 그 광경에 꾸밈없이 감탄했다.
“와......”
오이카와는 오아시스의 장관에 온통 넋을 빼앗겼다. 우시지마의 목적은 그러나 오아시스가 아니었다. 우시지마는 오아시스 너머의 언덕을 가리키며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 너머가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가 있는 구릉이었다. 잠시 우뚝 서 있던 오이카와는 오아시스를 곁눈으로 바라보며, 반쯤은 얼이 빠져서 우시지마를 따라 걸었다. 오아시스에서 언덕까지는 금방이었다. 모래비탈을 올라가느라 오이카와는 무릎을 손으로 짚고 걸었다. 발이 모래에 푹푹 빠져서 오이카와의 몸이 자꾸만 기우뚱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구릉 너머의 광경에 압도되었다.
수천의 모래언덕 너머로 태양이 지고 있었다. 광대하게 펼쳐진 사막이 온 눈에 가득히 보였다. 바람이 붊에 따라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하는 모래언덕들. 구릉 아래는 수천의 초승달이 누워있는 벌판이었다. 벌판의 저편, 굴곡진 지평선은 활활 타는 태양과 맞닿아있었다. 황혼녘의 낙조에 사막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이곳은 대사막의 입구였다. 또한 대사막의 출구였다. 이 길목을 통해 사람들이 동과 서를 왕래했다. 세상의 진기한 보물과 종교와 사상을 수레에 가득 싣고서.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길목이다. 모래언덕에는 수천 년에 걸쳐 이 땅을 밟았던 여행자들의 발자국이 사장되어있다. 누구나 이 구릉에 다다른다면 오래된 역사를 상상할 수 있으리라.
우시지마는 제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구경하라는 뜻으로 오이카와를 올려다보았지만 그는 넋을 빼앗겨 미동도 않았다. 주먹을 말아쥔 채 무연히 모래의 바다를 응시할 따름이었다. 우시지마는 그저 오이카와에게 이 장관을 보여주고 싶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에 덧붙일 말은 없었다.
낙조는 그들의 감상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붉은 사막은 삽시간에 태양을 거의 삼켰다. 어둠이 그들의 머리위에 바싹 다가와 있었다.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
오이카와가 중얼거렸다. 그는 한 대 맞기라도 한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대자연의 위용에 완전히 기가 질려버린 것이다. 우시지마가 가만히 바라보자 오이카와는 털썩 주저앉았다. 오이카와가 망연자실하게 깜박이는 눈에는 두려움마저 깃들어있었다. 다갈색 눈동자에 붉은 빛이 비쳐, 그의 눈동자는 새빨간 색으로 보였다. 어쩌면 사막에서의 기억을 복기하고 있는 것일까.
“안심해라. 뒤를 봐.”
우시지마가 나직이 말했다. 오이카와가 주저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둑한 빛이 드리웠을지언정 풍요로운 식생을 품은 오아시스가 그들의 등 뒤에 버티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후에 오이카와는 다시 모래바다를 내다보았다. 그는 무릎을 세워 양 팔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제 팔에 턱을 괴고 낙조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곧 지평선에 가느다란 붉은 띠가 드러났다. 모래와 하늘의 경계에서 붉은 빛이 산개했다.
우시지마는 그저 오이카와에게 이 도시에서 가장 멋진 장광을 보여주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푸른 오아시스와 모래로 된 초승달과 산개하는 빛무리를. 낙조를 본 다음부터 오이카와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인 감상에 빠져있는 것이다. 사막을 건너왔다면 매일 보았을 풍경임에도. 그의 기분이 어떻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시지마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가 다시 한 번 사막에 압도되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상상의 범위를 넘어선 광경을 목격했을 때의 허탈함과 비슷한 걸까, 우시지마는 생각했다.
여관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오이카와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우시지마도 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머무는 방으로 돌아오자 비로소 오이카와는 소리없이 한숨을 쉬었다.
“미안. 좀 쉬게 해줄래?”
오이카와가 우시지마를 비스듬한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얼마간 걷힌 것 같았던 피로가 다시 그의 얼굴을 잡아먹은 참이었다. 외출은 시기상조였을까. 우시지마는 그에게 위로의 말마디를 건네고 싶었으나, 마땅한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지체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들여보내고서도 한참을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갈 수 없었다.
우시지마는 벽에 이마를 기대었다. 건너편에서 막 침대에 몸을 뉘었을 오이카와를 상상했다. 오이카와가 침울해진 이유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내밀하고 세세한 속사정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진짜 이유를 알아야 했다. 오이카와가 섬을 떠나 대륙을 건너 사막에 들어와야만 했던 진짜 이유.
바람의 왕국 모래의 도시. 이곳에선 먼지처럼 숱하게 오가는 것이 사람이었다. 여행자도 보물도 역사도 이곳에 잠깐 머물다 저편으로 흘러갔다. 변함없이 붙박여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달이 매일 얼굴을 바꾸었고 오아시스도 모래언덕도 시시각각 결을 달리했다. 하물며 그 틈새에서 왕래하고 죽어가는 인간이란. 인간은 항상성과는 거리가 먼 존재다. 따라서 우시지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곧 떠날 존재에게 마음붙일 이유가 없었다. 사막의 여행자는 누구나 자신만의 사연을 갖고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해, 우시지마는 그 내면을 들여다볼 시도도 해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우시지마가 함부로 들여다보아선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들여다본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운명의 주인은 저 자신밖에 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타인의 운명을 대신 짊어질 수 없었다. 운명은 오롯이 개인의 것이어야 했다. 세상은 바람과 모래에 쓸려 급변하므로. 여기는 바람의 왕국 모래의 도시다. 모든 것이 잠시 머물렀다 떠나가는 세상의 복도이다. 하지만, 이따금씩 열풍이 불어온다.
서늘한 흙의 온도가 부유하는 생각들을 가라앉혔다. 그 밤, 오이카와는 다시 열에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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