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반쪽짜리 지구가 내다보인다. 달의 그림자가 가린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반절은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행성이다. 지구는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유유히 자전하고 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시간이 흐르는지 멈췄는지도 알지 못했다 우시지마는.
우시지마는 그의 앞에 서있는 키 큰 안드로이드를 우두커니 올려다본다.
오너가 주문한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할 뿐더러 피부와 체모 표현은 거의 예술적이고, 각기 체질까지 지니고 있다는 최신식 모델이다. 들여다보고 있자니 사람인지 안드로이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만약 거리 한복판에서 이를 마주쳤다면 우시지마는 놀라서 까무라쳤을 것이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살아있다고 생각했으리라.
안드로이드는 오이카와의 모습을 그대로 베꼈다. 신장과 이목구비는 말할 것도 없고, 머리모양과 모질, 서 있는 자세, 눈을 감고 있는 표정까지 완벽하게 오이카와 토오루의 것이었다. 그래서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오이카와를 다시 만난다면, 아니 오이카와의 모습을 다시 만난다면 뭐부터 해야 좋을까. 제작을 기다리며 우시지마는 내내 생각했지만 오이카와를 다시 만나는 자신은 잘 상상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우시지마는 어떤 말도 행동도 준비하지 못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예정된 날짜에, 정시에 그의 집으로 배달됐고.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개인적인 도덕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복제했다. 우시지마는 그제야 겁이 났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고야 만 기분이었다. 금단의 마술을 행한 것만 같았다. 섭리를 거슬렀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어쩐지 이 뒤엔 심판이 내려질 것 같았다.
이래도 되는 걸까. 아니, 그걸 생각하기엔 너무 늦었지. 기어이 여기까지 왔다.
우시지마는 가만히 안드로이드의 손끝을 매만졌다. 사람의 피부같이 말랑한 외피가 느껴졌다. 손가락을 조금 굽혀보니 일정 각도 이상으로는 굽혀지지 않았다. 아직 가동하기 전인 안드로이드는 사람가죽을 뒤집어쓴 로봇일 뿐이었다. 그는 얌전히 오너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기계인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우시지마는 안심했다. 안드로이드를 가동하기 전, 우시지마는 몇 차례나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는 안드로이드의 마네킨 같은 손가락을 붙잡은 채, 그 차가운 가슴에 이마를 기대고 저 자신에게 주문처럼 되뇌었다.
이건 안드로이드다.
너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될 수 없다.
안드로이드의 전원은 오른쪽 날갯죽지에 있다. 안드로이드의 등 뒤로 돌아가 옷을 걷어올리고 컨트롤러의 버튼을 누르면 살이 벌어지며 칩을 꽂을 수 있는 포트가 드러난다. 안드로이드 본체와 동봉된 칩을 거기에 꽂으면, 비로소 안드로이드가 가동되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 컴퓨터 단자 같은 것이 달려있으니 참으로 기이한 모양새가 아닐 수 없었다.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의 상의를 들어올렸다. 마른 근육이 뒤덮고 있고 피부가 얇게 발린 등이었다. 생전의 오이카와와 꼭 같은. 우시지마는 손바닥을 넓게 펴 안드로이드의 등을 쓸어보았다. 손가락을 만질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피부 아래 금속과 부품들이 꽉꽉 들어찬 양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칩을 박아넣을 위치를 더듬어보았다. 컨트롤러의 칩 버튼을 누르니 안드로이드의 살이 쩍 벌어지며 단자가 드러났다. 우시지마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칩을 밀어넣었다. 딸깍 하고 기계가 맞물리는 소리가 나더니 정전기가 일었다. 일순 안드로이드의 전신에 전류가 흐른 것이다. 우시지마가 손을 떼자 안드로이드는 한 차례 어깨를 떨었다. 조금 늘어뜨리고 있던 안드로이드의 고개가 반짝 들렸다. 다갈색 머리칼이 우시지마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안드로이드는 등 뒤에 뭐가 있는지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안녕, 우시지마.”
해사한 낯으로 안드로이드가 웃었다. 속눈썹이 촘촘한 눈이 반가움으로 가득했다. 우시지마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의 반응이 영 탐탁지 않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처음 만난 오너가 자신을 반기며 키스해주기라도 기대했던 걸까. 인사말에 답이 없자 안드로이드의 얼굴엔 실망감이 올라왔다. 그 모양마저 오이카와여서. 우시지마는 얼마간 욕지기마저 느꼈다. 갑자기 되살아난 오이카와 토오루, 오이카와 토오루를 연기하는 안드로이드. 제작과정에서 오이카와의 생체정보를 세세하게 입력한 것은 우시지마 본인이면서도 안드로이드가 과연 얼마나 현실적으로 구현할지 의구심이 들었었다. 그리고 이제 우시지마는 저의 교만을 탓했다. 기계는 오이카와를 흉내내는 인형일 뿐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똑같을 줄이야.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안드로이드 주문단계에선 뭐든 오너의 뜻대로 설정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의 습관이나 향후 그가 하게 될 중요한 선택까지, 유전정보처럼 심어두고 적절한 때에 자연스럽게 행동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우시지마의 안드로이드에겐 ‘살아가는 방법’이 미리 입력되어 있다. 오너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의 집에서 생활하는 법을 안다.
안드로이드는 소파에 앉아있거나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거실을 배회하며 우시지마의 눈치를 살폈다. 우시지마는 한 마디 말없이 안드로이드를 바라보고만 있었으므로, 안드로이드는 오너의 요구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안절부절못했다. 이런 때에는 불안지수가 높아지도록 프로그램된 것일 테다.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와 눈이 마주쳤을 땐 제가 먼저 눈을 피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오너의 감정에 대단히 기민한 안드로이드인 것이다. 안드로이드가 너무 눈치를 살피니 우시지마까지 불편해졌다. 저것과 뭘 해야 하는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시지마는 매뉴얼을 뒤적거리다가 반응도 조절 기능을 발견했다.
[반응도를 낮추고 자율성을 높이십시오. 안드로이드는 외부상황을 포착하는 대신 자신의 기분에 맞추어 행동합니다. 당신의 안드로이드가 어디에 관심을 보일지 궁금하시다면.]
안드로이드에게 기분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문장으로 읽으니 속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시지마는 속는 셈치고 컨트롤러의 화면을 눌렀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신문을 들춰보고 있는 안드로이드를 흘끗 보곤, 반응도 지수를 조금 낮추었다.
[반응도: 40퍼센트]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안드로이드가 오너 눈치 보기를 그만두고 삼십 분 내도록 신문기사 읽기에만 골몰하느라 집안이 고요해진 것 말고는.
신문을 다 읽은 안드로이드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기지개를 쭉 켰다.
“저녁은 나가서 먹는 게 좋아? 아니면 집에서 해 먹을까?”
여상하게 물어오는 안드로이드를 우시지마는 다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도록 지켜보았지만 아직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오이카와의 가죽을 빌려입고 오이카와의 목소리로 말하는 기계인간이, 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밖에 나갈 기분은 아닌 것 같네. 그냥 집에서 먹자.”
안드로이드가 말하며 일어섰다. 안드로이드는 슬리퍼를 끌며 부엌으로 걸어갔다. 찬장 문을 열고 안드로이드는 무언가 먹을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슬리퍼를 파닥거리며 걷고, 위를 올려다볼 땐 허리를 양 손으로 짚는 그 버릇. 우시지마는 천천히 그의 등 뒤로 다가갔다.
“먹고 싶은 거 있어? 만들 수 있으면 만들어줄게. 알다시피 난 내가 좋아하는 것밖에 못 만들어서...”
여상한 말투까지. 우시지마가 끔찍하게 그리워했던 것을 안드로이드는 아무렇지 않게 재현하고 있었다.
“토마토 스파게티?”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의 등을 끌어안았다. 갑작스런 포옹에 안드로이드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훅 끼치는 체온이 느껴져 당황한 것은 우시지마였다. 그는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안드로이드가 오이카와의 체온까지 모방했는지. 그리고 우시지마는 제 어리석음에 완전히 탄복했다. 안드로이드를 한참 얕보았던 것이다 그는.
“왜 이러실까.”
다정하게 중얼거리며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의 손을 더듬는다. 손바닥으로 손등을 겹쳐 쥐고, 안드로이드는 고개를 조금 뒤로 젖혀 우시지마에게 기대듯 했다. 정교한 금속부품이 가득 차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의 몸이었다. 꼭 오이카와 만큼의 무게.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의 어깨에 입술을 묻었다. 그리고 그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나직이 속삭였다.
“안으니 확실해지는군... 넌 오이카와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거든요. 애당초 너는 내 자아도를 30퍼센트로 설정했잖아. 내 7할은 오이카와 토오루지만 3할은, 그냥 나야.”
다소 까칠한 목소리로 안드로이드가 대답했다. 조금 전 연인 대하듯 하던 목소리와는 딴판이었다. 우시지마는 고개를 들어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보았다. 기분이 상한 표정이었다. 알고리즘에 따라 철저히 프로그램된 반응일까, 진짜 자존심이 상한 것일까. 우시지마는 가만히 생각했다.
[고유 자아: 25퍼센트]
달 세계는 일명 유토피아라고도 불린다. 우주에 대한 모험심을 주체할 수 없거나, 지구에 더 이상 미련이 없는 사람들이 달 세계로 이주해왔다. 개중에는 자진해서 온 사람도 있고 추방당해서 온 사람도 있다. 아직은 지구-달 이주 사업의 초기 단계였고, 여기 머무는 사람들은 일종의 실험대상이다. 달 세계의 생활은 매우 제한적이다. 산소가 보존된 집안에 머물러있거나 아르테미스를 배회하거나. 아르테미스는 센트럴 문, 루나아일랜드, 그리고 다이애나와 더불어 달 세계의 중요한 거점도시이다. 센트럴 문이 그 정석적인 이름답게 관료들이 밀집해 시스템을 운영하는 도시라면, 루나아일랜드는 이주자들이 군락과 가정을 형성하고 경작과 재배를 시도하는 도시다. 다이애나는 실험도시라고밖에 할 말이 없는데, 여기서는 지구에서 동식물 표본을 가져와서 달에서 적응 가능한지 연구한다. 이 도시는 주로 지구 환경을 달에 접목시킬 방법을 연구하여 달 세계만의 환경을 조성한다. 이곳에서의 생존테스트 결과는 지구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곤 한다. 근교에선 전기사업과 산소공급사업이 이뤄진다. 언급한 도시들뿐 아니라 곳곳에 중소규모 도시들도 여럿 있다. 고요의 바다 한가운데는 수감자들을 모아둔 감옥이 있다거나, 어린아이들만 모아둔 실험도시가 있다거나. 모든 도시는 돔으로 포장되어 있고, 모든 도시엔 관제탑이 있어 관료와 연구가들이 상주하며 도시를 관망한다.
아르테미스는 달 이주 초창기에 조성된 도시로, 지구의 초기 복제 모델이다. 버려진 도시라고도 하는데, 달에 가서 한탕 해보겠다는 자원자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사회는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초창기 이주자들은 달 세계에서 즐기는 방법을 모두 이곳에서 발명했다. 아르테미스는 일명 쾌락의 도시이다. 야외활동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달 세계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선 끝없는 유흥거리가 필요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유흥은 섹스고, 아르테미스에 가장 발달한 것은 유흥가이다. 휘황찬란한 간판이 내걸린 상점가에는 팔지 않는 것이 없다. 지구에선 거래금지 품목이었던 것들―약물과 마약류는 기본이고 인신과 장기처럼 살아있는 것들도 알음알음 거래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에서는 오직 관망만 한다. 경찰력은 강력범죄에만 동원되고, 사람들은 재판보다 주먹이 쉽고 빠르다는 믿음을 바꿀 생각이 없다. 섹스와 마약과 게임을 비롯해 아르테미스에는 쾌락에 젖어 달 세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가득하다. 유흥은 아르테미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어쩌면 숨쉴 수 있는 산소보다도 더. 오죽하면 ‘죽을 때까지 재밌게’가 아르테미스의 슬로건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고상한 유흥거리가 맞춤형 안드로이드라 하겠다.
아르테미스에선 돈만 지불하면 누구나 안드로이드를 가질 수 있다. 구매자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인체모델이 이미 구비되어 있다. 안드로이드는 특정 유명인사를 모델로 한 레디메이드 제품 이외에, 특정한 모델의 유전정보를 주입해 맞춤형 안드로이드를 제작하는 방법도 있다. 그 모델이란 반드시 죽은 사람이여야만 했는데, 아르테미스의 마지막 남은 도덕성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구매자는 모델과 생전에 어떤 관계였는지,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등등 면밀한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안드로이드 기술은 이제 성장과 생식 기능을 제외한 인체의 모든 기능을 접목한 지경이다. 최신 모델일수록, 요구사항이 세세할수록 안드로이드 제작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러나 모든 비용을 초월하여, 유전정보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의 정교함이란 그 안드로이드를 갈망하는 사람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다. 이른바 '좋아 죽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인간의 유일무이한 존엄성에 대해 묻는다면, 안드로이드 제작사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완벽한 쾌락을 앞두고 도덕성을 내세울 이는 없는 것이다. 달 세계는, 특히 아르테미스는 그런 곳이었다.
‘완벽한 삶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시지마가 선택한 안드로이드 제작사의 카피문구였다. 물론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가 그에게 완벽한 삶을 만들어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완벽이라니. 우시지마는 결코 가져본 적 없었고 앞으로도 가질 일 없는 수식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이죠라는 제작사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스스로를 농락하기에는 더없이 좋을 것 같아서.
안드로이드의 일거수일투족에 놀라지 않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오이카와의 손맛이 나는 음식을 씹으며 우시지마는 생각했다. 안드로이드는 맞은편에 앉아서 우시지마가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 자신은 물만 조금 들이켰다. 그러곤 한참 제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얼핏 보니 손끝이 붉었다.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가 보고 있는 걸 알아채곤 손가락을 내밀어 보여주었다.
“아까 토마토 썰다가 손을 베었어.”
안드로이드의 왼손 검지가 조금 벌어지고 피가 배어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의 생체조직에까지 놀라워하려니 우시지마는 기가 찼다. 이러다 나중엔 배탈이나 감기까지 걸리는 건 아닐까. 매뉴얼을 찾아보면 안드로이드가 일으킬 수 있는 질환에 대해 알 수 있겠지만 우시지마는 이제 일일이 놀라기보다 마음을 비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포크로 스파게티를 뒤적거리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돈값을 하는군.”
안드로이드가 인상을 팍 구겼다. 안드로이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가 앉아있던 소파로 돌아가 요란하게 털썩 앉았다. 그러곤 팔짱을 끼고 우시지마를 노려보았다.
감정이 상한 안드로이드를 어떻게 대해야 좋을는지, 당연히 우시지마는 알지 못했다. 기분을 풀어줄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지만.
저녁 먹은 것을 모두 토했다. 우시지마가 포크를 내려놓고 욕실로 직행해 한참동안 샤워를 한 뒤, 그에게 새로 배달된 최신 논문―다이애나 거주시민의 면역력에 대한 연구-달 석면 위험보고서―을 찬찬히 읽어보는 동안 안드로이드는 제자리에 붙박여 꼼짝을 않았다. 집은 벽이 없이 하나로 연결된 구조로, 책장과 진열장, 장식 구조물 따위로 거실과 부엌과 침실의 경계를 나누고 있을 뿐이다. 한쪽에 안락하게 마련된 우시지마의 서재에선 책장 틈으로 거실이 내다보였다. 안드로이드는 내내 무심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있는 게 다였다. 그렇다고 로봇처럼 멀뚱하니 앉아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턱을 괴고 TV를 응시하고, 때때로 TV볼륨을 조절하고 채널을 바꾸는 동작 정도는 하는 것이다. 시간이 되면 다리를 바꿔 꼬고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올리기도 했다.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에게 입력되어있을 명령들을 생각했다.
새벽 두 시가 넘었다. 서재에 불도 밝히지 않고 모니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눈이 침침했다. 우시지마는 안경을 내려놓으며 두 눈을 문질렀다. 흘끗 내다본 거실엔 여전히 안드로이드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는 담요를 어깨에 걸치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TV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빛이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파리하게 비추었다.
우시지마는 모니터 화면을 껐다. 거실로 나가 허브티를 한 잔 끓였다. 포트의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가 잔에 부었다. 향이 솔솔 올라왔다. 우시지마는 깊이 향을 맡으며 티백을 뒤적거렸다. 몇 모금 마시는 것으로 속이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저녁 내내 쿡쿡 쑤셨던 위가 더는 아프지 않았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작정인가?”
안드로이드에게 시선을 던지며 우시지마가 물었다. 안드로이드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웅얼웅얼 대꾸했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
“.........”
우시지마는 찻잔을 들여다보았다. 찻잔 속에 은은한 빛이 수면처럼 일렁였다. 그는 찻잔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골랐다. 우시지마가 아무런 말이 없자, 안드로이드는 퉁명스레 대답했던 것이 무색하게 우시지마를 흘끗거렸다. 내키는 대로 행동해놓고 눈치를 보는 것이다.
“싫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
한참 만에 우시지마가 대답했다. 어조에는 아무런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다. 정말로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가 뭘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었으니까. 이 새벽에 안드로이드와 말씨름을 할 이유가 없었다. 우시지마는 남은 찻물을 세 번에 나눠 모두 마셨다.
나이트가운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들기 전, 우시지마는 잠시 망설이다가 안드로이드에게 다가갔다. 안드로이드가 읽던 신문이 티테이블 한쪽에 접혀 있었다.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미치광이 니콜라스, 안드로이드를 살해하다
복수대상으로서의 대체인간?
한동안 아르테미스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대상자의 유전정보를 훔쳐 안드로이드를 제작한 후, 처참하게 살해하여 피의 복수를 완성했다는 미치광이의 이야기. 안드로이드 제작사는 구매자가 대금 상환 도중 얼마든 변심할 수 있기 때문에 일시금으로만 비용을 지불받는다. 제작기간은 통상 3개월이다. 그 시간 동안 미치광이 니콜라스는 온갖 인터뷰와 심사를 거쳐야 했을 것이다. 그만한 노력과 비용을 투자해서 죽은 사람을 되살려야만 했을까? 차라리 그의 무덤에 침을 뱉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이러한 의문들은 아르테미스 시민들의 구미를 당겼고, 니콜라스는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사법당국에선 미치광이 니콜라스의 죄를 심사하는 중이었다. 니콜라스가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우시지마는 관심없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살려내기로 결정한 데에 어떻게 사연이 없을 수 있을까. 그것만은 이해했다.
우시지마는 한번 더 안드로이드를 바라보았다. 안드로이드는 잠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우시지마를 올려다보았다.
“잠은 어디서 잘 작정인가?”
“......여기밖에 더 있겠어?”
“이 자리가 마음에 드나?”
“난 그냥 여기 있는 것뿐이야.”
“.........”
“여긴 네 집이잖아. 오너가 허락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할 수 없다구.”
투덜거리는 어조일지언정 안드로이드는 똑똑하게 말했다. 우시지마는 얼마간은 참담함을 느끼며 안드로이드를 응시했다. 그래서 몇 시간 내내 이 자리에 붙박여있었던 건가. 약간의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안드로이드는 오너에게 복종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는 건가.”
“나도 어느 정도 사회성은 있어서 말이지. 오너가 싫어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구. 너도 알 것 아냐? 안드로이드는 사랑받기 위한 존재다.”
정말 그랬다. 안드로이드의 마지막 문장은, 모든 안드로이드 제작사가 공통적으로 내걸고 있는 카피문구였다.
“이유야 어쨌건 나는 네게 사랑받기 위해 창조됐단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너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렇게 해주게?”
“......난 궁금할 뿐이다. 애정을 느끼는 건 안드로이드인지 오이카와인지...”
“내 7할은 오이카와 토오루이고 3할은 그냥 나라고 했잖아. 아까 네가 지수를 조금 변경했지만.”
안드로이드는 점점 더 난해해졌다.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가 미간을 좁힌 걸 알아채곤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부드럽게 다물린 안드로이드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우시지마의 숨이 가라앉았다. 그 여상한 얼굴에 온통 시선을 빼앗겨 버릇처럼 중얼거렸다.
“......오이카와.”
안드로이드의 다갈색 눈동자가 우시지마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완만한 눈매 속 큼지막한 눈동자가 우시지마를 가만히 응시했다. 시선이 곧게 마주치자 우시지마는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안드로이드는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깜박였다. 오너의 기행에 당황한 것이다.
“모든 게 오이카와인데.”
안드로이드의 모든 것이 오이카와였다. 사소한 버릇과 습관, 머리털 한 올까지 모두, 모두 오이카와 토오루여서. 오이카와 토오루가 눈앞에 있다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역설이다. 우시지마가 안드로이드의 손가락을 쥐었다. 아까 베였다던, 지금은 피가 굳어 갈색으로 굳어진 부분을 조심스레 문질렀다.
안드로이드는 기계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우시지마가 그의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구원을 갈구하듯 갈증이 이는 손으로 안드로이드의 허리춤을 꽉 쥐었다. 우시지마의 어깨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우시지마는 상처받은 짐승처럼 안드로이드의 무릎위로 무너져내렸다. 왜 네가 내 앞에 있어서. 왜 기어이 나는 너를 다시 만나서. 후회가 그를 덮쳤다. 머뭇거리는 안드로이드의 손이, 우시지마의 뒤통수를 어설프게 쓰다듬었다.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 헤아리지 못했다. 우시지마는 다시 오이카와의 얼굴을 올려다볼 엄두를 못 내고, 그의 무릎에 엎어진 채로 멍하니 거실 저편을 응시했다. 재색 월면 위로 별이 몇 개 반짝였다. 안드로이드는 금세 능숙해진 솜씨로 우시지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드로이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우시지마 머리위에 뚝뚝 떨어졌다.
“오이카와는 어떻게 죽었어?”
다정히 묻는 목소리. 심장이 곤두박질쳤다.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의 허리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우린 달로 이주할 계획이었다. 오이카와는 선발대였어.”
“.........”
“수송기가 눈앞에서 추락했어. 엔진이 폭발해서... 화염이......”
우시지마는 더 말하지 못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폭발하는 수송기의 기억은 무시로 그를 후려쳤다. 오이카와가 불에 타던 그 순간 우시지마의 삶도 활활 탔다. 오이카와는 재가 되었고 우시지마의 삶도 재가 되었다. 기억은 복기할수록 흐려지고 왜곡된다고 하던데 고통의 농도는 옅어지는 법이 없었다. 우시지마는 차라리 그 기억이 자신을 죽을 지경에까지 몰고 가길 원했다. 기억 그 자체는 우시지마를 죽이지는 못할지언정 벼랑 끝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도록 내몰 수는 있으므로.
안드로이드는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응, 하고 대답했던 것 같다. 다정하고 눈치 빠른 안드로이드. 자신이 오이카와라 말한다면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오이카와. 우시지마는 눈을 가린 채 무조건적으로 그에게 순응하는 것이다. 이 순간 우시지마가 생생하게 느낀 것은 제 울음으로 축축해진 안드로이드의 무릎이다. 그리고 오이카와의 손가락이 제 머리를 쓰다듬는 감각이다. 깜깜해진 눈은 어떤 빛도 들이지 못했다. 우주공간에 오이카와와 함께 표류하는 기분을 느꼈다. 영원히 이러고만 있을 수 있다면. 이대로 죽을 수만 있다면.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가 다정히 자신을 죽여주길 바랐다. 오이카와의 손이 자신의 등을 떠밀어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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