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온 이후 처음으로, 꿈도 꾸지 않고 잠들었다.
창밖에 반쪽짜리 지구가 내다보인다. 하지만 우시지마가 누워있는 곳은 거실이 아니라 침대 위다. 침실 쪽에 난 창은 늘 암막커튼으로 덮어두어 밖을 볼 수 없는데. 내가 언제 커튼을 걷었더라. 잠에서 깨어나 무연히 눈꺼풀을 깜박이며 우시지마는 생각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커튼의 매듭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이유가 오이카와가 매듭짓는 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버릇처럼 눈길을 빼앗겼을 뿐이었다.
오이카와. 나의 토오루. 복기하는 것만으로 불같은 고통이 살아나는 이름이다. 우시지마는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받는 느낌에 입을 틀어막았다. 그 바람에,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던 팔뚝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고개를 조금 돌려 등 뒤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본다. 오이카와가 자신에게 몸을 붙인 채 잠들어있었다. 우시지마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천천히 오이카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꿈에라도 안 나와주던 사람이 지금 우시지마 앞에 잠들어있다. 평온하게 두 눈을 감고 입술을 다물고서. 우시지마는 형용하지 못할 경외감을 느끼며 오이카와에게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을 오이카와의 코끝에 가져다대자 색색 쉬는 숨결이 느껴졌다. 더할 나위 없는 오이카와였다. 우시지마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는 오이카와의 손을 끌어 자신의 허리께에 둘렀다. 눈을 지그시 감으니 지난밤의 균열이 떠올랐다.
‘여기서 자면 감기 들어.’
지치도록 울던 우시지마를 달래 침대까지 데려온 것은 안드로이드였다. 안드로이드는 친절하고 다정하게 우시지마를 침대에 뉘었고, 마치 그렇게 하자고 약속한 듯 우시지마에게 몸을 비스듬히 겹쳐 누웠다. 우시지마의 등과 안드로이드의 가슴이 맞닿았다. 다리가 엉켰다. 우시지마가 허락의 언어를 입에 올린 적 없었음에도 안드로이드는 자연스레 행동했다. 오너가 그의 무릎에 엎드려 우는 동안 전부 이해했다는 듯이. 늘 그래왔다는 듯 여상하게. 우시지마는 그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던 것 같다.
그리고 우시지마는 무사히 깨어났고.
우시지마는 잠든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내도록 들여다보며 오이카와답지 않은 부분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 그래서 오이카와가 진짜이고, 우시지마가 오이카와를 구현하기 위하여 애썼던 일들이 가짜인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 몇 년간 우시지마는 하루도 빠짐없이 끔찍한 나날을 보냈다. 잠들기도 어려웠고 깨어나기도 어려운 그런 매일을 거듭했다. 비용을 지불하고 제작한 달 세계의 안드로이드는 그러나 우시지마의 시간들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곪아서 합병증에 시달리며 썩어가던 환부를 깨끗한 물로 소독한 것 같았다. 어마어마했던 상실의 고통은, 오이카와 토오루가 눈앞에 보이고 피부에 느껴지는 것으로 나아질 고통이었나? 여념이 밀려들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코끝을 문질렀다. 그러자 안드로이드는 잠결에 콧등을 찌푸렸다. 우시지마는 가만히 그 코끝에 입술을 대었다.
안드로이드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침대를 벗어났다. 작업용 패널을 켜자 세이죠로부터 메시지가 한 통 도착해 있었다.
[ 안드로이드 제작만족도 조사 : 우시지마 와카토시 님 ]
제목 밑으로 질문들이 줄지어서 우시지마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외모는 어느 정도 근접합니까? 목소리와 어조는 균일합니까? 오너에게 겸손하게 행동합니까? 자유의지를 조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몇 개 읽어보던 우시지마는 그만 전원을 껐다. 오이카와는 제작됐고, 더는 세이죠로부터 추궁받고 싶지 않았다. 우시지마와 세이죠의 거래는 어제부로 끝났다.
아르테미스 외곽지역에 스스로를 유배시켜 고독한 집에서 홀로 시간을 죽이던 우시지마였다. 타오르는 불길의 기억이 무시로 그를 후려치는 걸 느끼며 느린 속도로 죽음에 다가가고 있었다. 마침내 오이카와를 안드로이드로 구현하기로 결정하기까지도 괴로웠지만, 그후 제작사와 수없이 접촉하며 오이카와 토오루에 대해 인터뷰하는 일은 더욱 괴로웠다. 괴롭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우시지마는 매 인터뷰를 끝낼 때마다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여태까지 충분히 고통받았으니 더 고통스러운 일은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 오산이었다. 우시지마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달인지 연옥인지 알지 못했다. 그가 새로이 배운 것은, 사람은 얼마든지 고통받을 수 있고 고통에는 그 바닥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완벽한 삶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이죠 사의 게이트도어를 통과하기 전 우시지마는 입구에 걸린 간판을 한참이나 올려다보았다. 첫 번째 인터뷰는 대면으로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로비에서 세련된 수트를 갖춰입은 안드로이드가 깍듯하게 인사하며 그를 반겼고, 미팅룸으로 안내했다.
“유가족의 동의를 받아 우시지마 씨와 만나기 이전의 데이터는 그쪽에서 받고 있습니다. 우시지마 씨는 오이카와 토오루 씨와 만나던 순간부터의 기억을 구술해주시면 됩니다.”
의사처럼 하얀 가운을 걸친 담당자가 설명했다. 그는 우시지마가 이미 제출한 오이카와에 대한 자료를 훑어보며 안경을 밀어올렸다. 물론 그는 의사가 아니었다. 그의 일은 설계사에 가까웠다. 입회자로 들어온 안드로이드는 그러나 그를 닥터라고 불렀다. 아무래도 좋았다. 안드로이드는 대화를 모두 녹취하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출력하며 닥터의 비서 역할을 수행했다.
“우선은 굵직한 사건부터 이야기해 보세요. 오이카와 씨에 대해 가장 강렬한 기억을 몇 개 추리면 저희가 그분에 대해 대강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데이터를 중심으로 살을 붙여나갈 거고요. 흠... 첫 번째로 오이카와 씨와 같은 대학에 입학하던 날이라고 쓰셨는데요. 영광은 우주에, 우주는 우리 손에. 이건 무슨 말인가요? 마치 슬로건 같은데요.”
닥터와 안드로이드가 우시지마를 주시했다. 우시지마는 그들이 내어준 음료를 쭉 들이킨 후에 입을 열었다.
“칼리지의 구호 같은 거였습니다. 우주학자를 양성하는 곳이었으니까요.”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영광은 우주에, 우주는 우리 손에. 이상으로 축사를 마칩니다. 입학생 대표 오이카와 토오루.”
축사가 끝나자마자 설렘 가득한 환호와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우시지마가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건, 오이카와가 입학생 대표로 단상에서 연설하던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그들은 애리조나 항공우주칼리지에서 만났다. 오이카와는 일찍이 미들스쿨 시절부터 우주공학 분야의 천재로 학계에 이름을 알린 인사였다. 세계 최고의 항공우주학교였기에 그만한 이력을 가지지 않은 입학생은 없었지만, 우시지마의 눈에 오이카와는 그중 가장 밝게 빛나보였다. 왜였냐고 이유를 묻는다면,
“우주비행사가 될 수 없다면, 우주가 우릴 원하도록 만들어야지.”
오이카와는 양 허리에 두 손을 당당하게 짚고 모두에게 선전포고했다. 인류가 우주에 도시를 건설하는 시대였다. 구세계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 가장 활발한 개척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항공우주칼리지 학생이라면 모두가 우주를 꿈꾸지만,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었다. 우주에서 이용 가능한 자원과 여건이 아직 제한적인 것이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자신이 선택받을 거라며 가장 먼저 선언했다. 그런데 그 자신만만함이 밉지가 않았다. 오히려 오이카와의 포부를 듣고 있노라면 우시지마는 자신에게까지 희망찬 에너지가 주입되는 듯했다. 우시지마가 감탄했던 건, 오이카와가 사람을 매료시키는 능력이었다. 그는 어딜 가나 이목을 끌었고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았다. 늘 쾌활하게 웃고 떠들며 자신의 연구를 다져가는 사람이었다. 오이카와는 도시설계 분야에 두각을 드러냈다. 달 세계라는 한정된 공간에 부지와 시설을 효율적으로 설계하는 일이었다. 심미안이 곁들여진 오이카와의 도시설계는 여러 사람들의 안목을 끌었고, 그는 그의 이십 대를 온통 달 도시 연구에 바쳐 일했다. 그리고 그와 팀을 이뤄 설계를 검증하는 것이 우시지마의 역할이었다. 우시지마는 설계에 결함이 있으리라고 가정하고 설계도면을 검토해야만 했으므로, 처음에 오이카와와 상당히 충돌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내 설계가 그렇게 못미더우면 네가 직접 하지 그래?”
“그게 아니라 오이카와, 오류를 발견하는 것이 내 일일 뿐이다.”
“이번에도 오류 없으면 밥 사기야.”
그런 식이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일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 우시지마를 못마땅해 했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불평불만을 묵묵히 감수하면서도 한 번도, 단 한 번도 싫었던 적이 없었다. 그는 이미 오이카와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오이카와의 설계엔 결함이 없었으므로. 실로 그의 설계는 아름답고 위대했다. 오이카와의 손에서 빚어진 것들에 어느새 마음을 쏟게 되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뮤즈였다. 둘이서 만들고 검증한 세계를 구축하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둘은 싫어도 동고동락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우주전파 송수신기가 설치된 구역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헤드셋을 나눠끼고 우주에서 들어오는 신호음을 들으며, 우주에 나와있는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우시지마는 말없이 귀 기울이고 있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다가, 나는 네가 좋은 것 같다고 고백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입 모양을 눈으로 읽었으나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헤드셋을 벗기며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우주가 그들의 전부가 되었듯, 서로가 서로의 전부가 되는 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지구와 달 사이 거리는 38만 킬로미터이다. 38만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현지에 도시를 세우기 위해선 간접적인 매체를 이용해 조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이카와는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구시대적인 방식들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천체망원경으로 달구경하는 걸 좋아한다든지, 스스로 식재료를 썰고 끓여 요리한다든지. 오이카와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도 좋아했다. 모두 로봇과 안드로이드로 대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이카와 덕에 우시지마도 클래식한 방식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지면 인쇄된 뉴스페이퍼를 구독했다. 오이카와는 마음에 드는 칼럼을 읽으면 가위로 오려 책상에다 붙여놓았다. 창문을 열어두면 마른 종이들이 바스락거리며 흔들렸다. 오이카와가 평범했더라면 허블망원경이나 운석 따위의 골동품을 모으는 수집상이 되었을 것이다. 클래식한 취미 덕분인지 오이카와는 달 세계에 붙은 다이애나나 아르테미스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 했다.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이면서 사냥의 여신이란 말이지. 그게 무슨 관계였을까?”
아르테미스 구역도를 들여다보다가 오이카와가 물었다. 그들이 달에서 벌이는 사업과 신화는 일절 관계없으면서도 신화에 나오는 이름을 인용한 것이 퍽 낭만적이라는 것이다.
“글쎄, 하지만 아르테미스의 연인이 오리온이었고 그도 사냥신이라는 건 기억난다. 누구 한 쪽이 죽었던 것 같은데.”
“......아무려나. 부르기 좋으면 됐지 뭐.”
오이카와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좋다는 말에는 우시지마도 동의했다. 지구에도 쾌락의 도시로 명성을 떨친 아르테미스는, 도착한다면 아름다운 달의 여신이 그들의 이마에 키스해줄 것 같은 막연한 환상을 일으켰다.
“함께 달로 가는 거야.”
어느 늦은 여름밤 오이카와가 우시지마 곁에서 기약한 말이었다. 둘은 연장근무를 끝내고 자정이 넘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잠시 도로에 차를 세우고 별구경을 했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위해 트렁크를 열고 담요를 깔았고, 둘은 불편하게 등을 대고 누워 우주를 눈에 담았다. 손에 잡힐 듯한 우주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응. 머지않았다.”
새삼스러운 언약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우시지마는 그렇게 답해주었다. 그날 오이카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릴 적에는 우주비행사를 꿈꿨다고 했다. 하지만 세계항공우주국에 들어가는 일보다 직접 별을 따러 가는 편이 더 쉬울 것 같았다고. 오이카와는, 자력으로 우주에 나아갈 수 없다면 우주가 자신을 원하도록 스스로를 갈고닦길 택했다. 우주를 개척하는 시대였으므로 우주산업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졌다. 오이카와가 그 분야 실력자가 되기로 한 것은 굉장히 현명한 결정이었다. 실제로 그는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이루었다. 우시지마는 가업을 따라 그 분야를 선택한 것뿐이지만, 오이카와를 보면서는 사람의 꿈이란 얼마나 낭만적인지, 또 얼마나 낭만적으로 사람을 이끄는지를 깨달았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꿈꾸게 해주었다. 꿈꾸는 자들의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프런티어였다. 일은 고됐지만 아무런 걱정이 없던 시절이었다. 사랑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들이 세운 도시로 날아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정말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들의 계획에는 결함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저편 기슭에 있는 이상향을 직시했다. 저 건너편에 무엇이 있고 그들이 저편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 완벽한 계획을 실행만 하면 되었다. 강을 건너 저편으로 가기만 하면 되었는데. 그들을 태운 배가 좌초하리라는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오이카와가 선발대로 떠나고 우시지마는 한 달여 후에 오이카와가 요청하는 지원장비를 싣고 따라갈 계획이었다. 오이카와가 길을 트고 우시지마는 그 길을 신중히 밟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발대와 후발대라는 배치도 참 기막혔다. 정말로 우시지마는 오이카와가 일러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우시지마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는 오이카와 토오루를 만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시지마는 꿈꾸는 법도, 길을 걷는 법도 몰랐을 것이다.
“어쩌지, 와카쨩 한 달 후에야 볼 수 있겠네.”
“한 달... 금방 흐르겠지. 정신없이 바쁠 거다.”
오이카와가 떠나던 날 아침, 짐짓 아쉬운 목소리로 오이카와는 헤어져있을 한 달을 걱정했다. 한 달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될 것이다. 우시지마는 그런 오이카와를 기쁘게 바라보았다. 잠시간 헤어져있기도 아쉬운 연인사이라는 점이 그의 마음을 뿌듯하게 채웠다. 소집시간을 여유롭게 남겨두고 그들은 전망대에서 발사대를 내려다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오이카와는 곧 들뜬 목소리로 지구에서의 마지막 커피향을 음미했다. 통유리에 비친 그의 얼굴은 자신감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우시지마가 턱을 끌어당겨 키스했을 때, 오이카와는 놀라서 커피잔을 떨어뜨렸다. 종이컵은 사방에 액체를 튀기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의 바짓단이 젖었다. 발사대로 진입하는 게이트 앞에서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귓가에다 속삭였다.
“기다리고 있을게.”
시일이 한참 지난 후에 우시지마는 그때 자신이 기민한 미신론자였기를 바랐다. 손에서 놓쳐 떨어뜨린 커피컵을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였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오이카와가 함선에 오르지 못하도록 막았다면. 물론 부질없는 가정이었다. 함선이 폭발하여 발사대와 그 근방을 초토화시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다음에는 말이다.
제 눈으로 목격하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결함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했는데. 아직 바짓단이 젖어있는데. 그들의 위대한 설계에 닿아보지도 못하고, 이런 식으로 끝장날 수는 없었다.
어쩐지 무섭도록 행복하더라니.
오이카와의 유해를 수습한 단지를 받아들며 우시지마가 한 생각이다.
그때부터 우시지마는 연옥을 걷기 시작했다. 오이카와와 함께 그들의 꿈은 불타버렸고 우시지마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활활 타고 난 재가 그를 천천히 질식시켰다.
몇 년을 스스로 고립된 채 보냈다. 항공우주국에서는 오이카와를 대체할 인력으로 우시지마를 원했다.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우주를 개척하는 시대에 주저하고 있을 새는 없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며 세계적인 대업 같은 것은 이제 우시지마와는 관계없었다. 우시지마는 극구 자리를 마다했다. 가능한 한 모든 일은 자택에서 해결했다. 오랫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속했던 외부세계와 맞닿는 일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우시지마의 등을 떠밀며 달을 가리킨 것은, 그들의 칼리지 시절 지도교수였다.
“토오루가 못 다 이룬 꿈을 이뤄야 하지 않겠나?”
너무나 진부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감흥없이 들렸다. 우시지마는 하얀 낮달을 올려다보았다. 저곳에 간다 한들 오이카와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아르테미스가 저곳에 있다.
본래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뒤를 따를 계획이지 않았나. 우시지마는 오이카와가 개척한 길을 따라야만 했다. 이끌고 따라가는 관계.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좇아야 했다. 그래야 옳았다. 그렇게 시작한 관계였으므로 끝의 모양도 같아야 했다. 그는 그간 느끼지 못했던 모종의 사명감을 느꼈다. 우시지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가 우시지마 씨가 지구를 떠난 경위군요. 좀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오이카와 씨가 아르테미스를 설계하셨다는 말인가요?”
닥터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우시지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과장입니다. 하지만 아르테미스의 신축된 지구에는 오이카와의 손길이 닿아있다고 봐도 좋습니다.”
“우와, 젊으신 나이에 엄청난 업적을 이루셨는데요... 죄송합니다. 사견이 좀 지나쳤습니다. 오이카와 씨의 안드로이드를 제작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닥터는 민망한 낯으로 헛기침하며 우시지마에게 음료를 권했다. 그리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오이카와에 대해 고백하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오이카와에 관한 기억을 복기하는 일도, 기억을 혀에 올리는 일도 터무니없이 괴로웠다. 닥터는 그러나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필요한 질문만 해가며 최대한 우시지마가 스스로 진술하도록 했다. 제삼자의 의견이 지나치게 개입되는 걸 지양하기 위해서라고. 닥터는 우시지마에게 최대한 소상히 진술해야 실제와 근접하게 구현할 수 있다고 독려했다. 닥터는 우시지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물론, 우시지마의 반응을 면면이 살펴 사건과 감정과 주인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기록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면 인터뷰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음 질문은 달에서의 삶에 관한 당신의 만족도입니다. 우시지마 씨의 감정과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시면 되는데... 시간관계상 이야기는 다음번에 들어야겠습니다. 다음번엔 이 부분부터 시작합시다.”
닥터가 탁상 위의 시계를 톡톡 두드렸다. 미팅룸에 들어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해 수 시간이 지나 있었다. 우시지마는 얼마간 해방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드로이드가 우시지마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룸을 나가기 전 닥터를 돌아보았다. 그는 우시지마를 배웅하는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시지마가 물었다.
“실례합니다만, 당신도 안드로이드입니까?”
“안드로이드에게 정신분석을 맡기기엔 좀 이르죠. 하지만 십년 안에는 따라잡힐 겁니다.”
대면인터뷰가 몇 차례 진행된 후, 세이죠에서는 질문이 빽빽하게 적힌 파일을 우시지마에게 보내고 회신받는 식으로 작업을 전개했다. 세이죠에서는 오이카와 토오루에 대해서라면 아주 내밀하고 사소한 버릇 하나까지도 모두 상세하게 기술할 것을 요구했다. 우시지마는 매번 또 다른 종류의 괴로움을 맛보아야만 했다. 오이카와 토오루의 존재를 되새기며 상기하는 일은 곧 우시지마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되새기는 일과 같았으므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는 반면 답변을 작성하다가 막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를테면 오이카와가 팬케이크에 시럽을 얼마나 첨가했는지 답변할 때. 작은 단지에 담긴 메이플시럽을 흥건하게 적셔먹었던 것 같은데 수치화하려니 한참을 골똘히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우시지마는 곧 안드로이드가 그럴 듯하게 구현될까 하는 걱정을 접었다. 이 정도로 자세히 데이터를 입력하는데 한번 믿어볼 만하지 않은가. 우시지마가 안드로이드 제작에 애쓴 이유는 단 하나, 오이카와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오이카와 토오루라고밖에 할 수 없는 안드로이드가 우시지마의 집으로 배달됐고.
우시지마는 다시 오이카와를 만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저 재회하길 바랐지, 안드로이드는 결코 오이카와가 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한낱 기계에게서 오이카와를 겹쳐볼 리가 없었다. 우시지마는 그러나 스물네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안드로이드 앞에 무릎을 꿇었다. 회개하는 짐승처럼 조용히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다. 물릴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에게 퇴로를 알려준 일이 없었다.
우시지마는 얼마나 더 죽고싶은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진짜와 가짜, 과거와 현재, 단절과 영속 등으로 분별되었던 것들의 경계가 흐려졌다. 세상을 오이카와가 있는 쪽과 없는 쪽으로 나눈다면, 우시지마는 그 중간에 서 있다고 봐야 할 터였다. 우시지마는 그 양쪽 세계 모두에 속해 있었다. 두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우시지마는 세계를 양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이카와의 평온히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는. 기적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진위를 따져 무엇할까. 분별심은 미혹을 자아낼 뿐이었다.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머리칼 사이사이 부드러운 체온이 배어 있었다. 느껴지는 손길에 안드로이드가 잠을 깼다. 안드로이드는 오너를 발견하곤 빙그레 미소지었다.
“안녕, 우시지마.”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안드로이드가 우물거렸다. 우시지마는 손끝에서 번지는 환희를 느꼈다.
수십 시간 만에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의 공간에 맞추어 자신의 행동양식을 설계했다. 마냥 눈치만 보는 것은 결코 오이카와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던지 안드로이드는 최대한 자유로이 행동하면서도 놀랍도록 섬세하게 우시지마의 기분을 맞추었다. 안드로이드는 항상 우시지마의 시선이 닿는 곳에 머물렀다.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가 기운을 차리도록 끼니를 챙겼으며 우시지마에게 도달하는 보고서를 함께 검토했다. 또한 잠자리에 같이 들었으며, 우시지마가 잠들기 전까지 몇 마디 잡담을 건네어 그를 나른하게 해주었다. 안드로이드는 오너가 저에게 요구하는 것이 생길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우시지마가 미처 막을 틈 없이 제 존재감을 키우는 건, 오이카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시지마는 더는 안드로이드를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는 마침내 오너가 자신을 박살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놓았고, 대부분은 오이카와 토오루인 채로, 일부는 저 자신인 채로 행동했다. 우시지마로서는 그것이 무얼 하든지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시지마에겐 아슬아슬했던 며칠이 지났다.
“나에게서 뭘 원하나?”
그는 참지 못하고 안드로이드에게 물었다. 지구에서 가져온 마지막 와인을 모두 동낸 후 만취한 다음이었다. 구름이 낀 것처럼 흐릿한 정신으로도 오이카와의 모습은 정확하게 아른거려서, 우시지마는 어떤 방법으로든 안드로이드를 피할 길은 없으리라는 것을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 제가 자초한 일이었다. 우시지마가 결국 미쳐버리는 것 역시 그의 예상범위에 들어있던 일이었다. 안드로이드는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우시지마의 맞은편 의자를 빼서 앉았다. 그리고 우시지마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그에게 손가락을 얽었다.
“말하지 않았어? 나는 네게 사랑받으면 족해. 그뿐이야.”
애정이 안드로이드의 행동원리라도 되는 양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정말로 사랑받는 방법을 타고난 존재인 것만 같았다. 안드로이드에게도 일종의 생존본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도저히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안드로이드의 손가락을 쥔 채 테이블에 엎드리고 말았다. 그는 어느새 타협에 가까워졌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의 세계를 손쉽게 주물렀다.
단 며칠. 안드로이드가 오너의 허락을 받고 그 틈새를 파고들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뭘 보고 있어?”
등 뒤에서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이카와의 손이 다정하게 우시지마의 어깨를 감쌌다.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가 건네준 찻잔을 받아들며 스크린패널을 내려놓았다. 안드로이드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오너와 패널을 번갈아보았다. 그래서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의 턱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입술이 겹쳐졌다. 안드로이드는 허리를 구부린 채 오너의 키스에 응했다. 따뜻하고 적극적인 혀가 밀고 들어오자 우시지마는 찻잔을 놓치고 말았다. 유리컵과 바닥 사이의 파열음이 요란했다. 우시지마는 그러나 안드로이드의 뺨을 깊이 끌어당겼다. 그는 안드로이드가 저에게 침투하여 빠짐없이 메워주길 바랄 뿐이었다. 오이카와와 입을 맞추고 있는 순간에는 무엇도 그의 관심을 앗아가지 못했다. 우시지마는 안드로이드와의 입맞춤에 눈앞이 하얗게 터지는 걸 느꼈다. 그는 안드로이드의 몸을 끌어당겨 품에 소중히 안았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산화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으므로, 오이카와의 감각을 다시 느낀다는 것만큼 역설적인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처음 안드로이드를 안았을 때 가슴에 생생히 느껴졌던 그 감각이야말로 안드로이드가 가짜 오이카와라는 증거일 터였다. 그러나 현실은 꿈보다 잔인하다고,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의 굳건한 기대와 예상을 보란 듯이 깨뜨렸다.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의 슬픔을 먹고 키스를 돌려주었다. 안드로이드는 너무나 손쉽게 우시지마의 세계를 해체하고 재건했다. 누구도 깨진 유리 따위에 신경을 할애할 생각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우시지마가 읽고 있던 뉴스는 말할 것도 없이.
니콜라스 그레이슨, 안드로이드 살해혐의 무죄
사법부 가라사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꾼다
안드로이드를 살해하고 자신이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미치광이 니콜라스 사건이 막 결론난 참이었다. 사법당국에서는 그에게 형사상 무죄를 선고했고, 경찰에서는 기물손괴죄를 검토할 수 있겠으나 안드로이드는 오너의 고유한 소유물이므로 그마저도 어려울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우스꽝스런 인형극이 아닐 수가 없었다. 기사 밑에 덧붙여진 칼럼들은 미치광이에게 휘둘린 사법당국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칼럼에는 정제되지 않은 격렬한 문장들이 실려있었다.
‘-어디 한번 지켜보도록 하자. 우리의 사랑스런 안드로이드가 우리를 처참하게 죽였을 때, 사법당국은 그에게 살인죄를 적용시킬 것인가? 사법부 말마따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 기물인데 말이다! 아르테미스는 조만간 다시 도전받을 것이다.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다.’
물론 이건 어느 개인의 소견일 뿐이다.
한 차례 무너졌던 우시지마의 세계가 재구축되고 있었다. 우시지마의 일상은 궤도를 조금 수정해, 안드로이드와 함께 공전했다.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오이카와를 보면서는 과거도 미래도 의미를 잃었다. 우시지마는 종종 안드로이드를 끌어안고 창밖의 푸른 행성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시지마가 떠나온 과거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지구별을. 안드로이드는 조용히 우시지마의 어깨에 기대어 그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안드로이드는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여러 날이 지나서야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가 아르테미스에 온 연유를 물었다.
“처음부터 너를 만들려던 계획은 아니었다. 오이카와의 세계를 따라가고 싶었을 뿐...”
“그래도 네 덕분에 내가 여기에 있잖아.”
거짓의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맑은 눈동자였다. 이렇듯 충실한 진심을 내비치는 안드로이드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우시지마가 안드로이드를 바라보듯 안드로이드도 오너를 바라보았다. 우시지마의 집안에서 서로의 세계가 찬찬히 섞여들었다.
죽음은 우시지마와 오이카와에게 각기 다른 속도로 다가왔다. 오이카와에게 너무 빨리 찾아온 죽음은 우시지마에겐 너무 느리게 찾아오고 있었다.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처럼 무력하게 우주공간을 떠돌던 우시지마는 스스로 해답을 발견했다. 안드로이드가 우시지마의 답이었다. 우시지마는 후회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는 언제나 오너의 편이 되어줄 것이며, 우시지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등을 떠밀어줄 것이다. 안드로이드는 우시지마의 영혼을 제 색깔로 물들여줄 것이다. 안드로이드에 미친 오너의 이야기는 늘 비극으로 끝나지만 당사자들에겐 희극이다. 우시지마는, 대우주에서 소우주로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고유 자아: 0퍼센트]
이것이 달 세계에서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결론이었다.
“오이카와, 저번에 말했던 아르테미스 신화 말인데. 결말이 생각났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갸웃하며 우시지마를 바라본다. 우시지마가 그를 끌어안고 있었으므로 오이카와는 고개만 조금 돌린 채다. 오이카와의 숨결을 느끼며 우시지마는 조금 웃었다.
“아르테미스와 오리온을 질투한 훼방꾼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훼방꾼은 아르테미스를 도발해 오리온에게 화살을 겨누게 했다. 물론 아르테미스는 화살 끝에 있는 것이 연인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달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은 시위를 놓았고, 그 화살은 오리온의 머리를 관통했다.”
“음, 들으니까 기억난다. 그래서 아르테미스가 오리온을 별자리로 만들어줬지?”
“그랬지. 그리고 아르테미스는 별자리를 보며 오리온을 회고했겠지.”
“그러면 해피엔딩이네. 적어도 오리온은 연인의 손에 죽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오이카와.”
우시지마는 소리없이 웃었다. 세상 모두가 이 이야기를 두고 비극이라 말한대도 두 사람에겐 명백한 희극이었다. 두 사람은 아르테미스의 편이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오이카와를 사랑하면서도 막연한 두려움을 느껴야 했던 과거는 38만 킬로미터 바깥에 있다. 우시지마는 38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과거를 그만 잊기로 한다. 이제 그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있다. 누구도 아닌 우시지마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한결같을 것이다. 다시 얼마간 시간이 지나, 이제는 평생 우시지마를 사랑했다는 듯 행동하는 오이카와였다. 이제 우시지마는 자신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역설에 도취되길 원했다. 이미 우시지마는 역설에 만취해있는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끝이 보이고 있었으므로, 우시지마는 더는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주에서의 밤을 설치지 않아도 되었다. 우시지마가 더 이상 죽고싶은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죽음은 보폭 넓은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오이카와가 꿈을 빌어 우시지마를 찾아왔다. 진짜 오이카와인지 재현된 오이카와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해사하게 웃는데도 우시지마는 차마 손을 흔들어주지 못했다.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고백하고 싶었는데,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가 않았다. 우시지마는 손톱으로 제 목을 긁었다. 오이카와는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반쯤은 원망하는 것 같은 목소리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가 변명하길 기다렸으나 대답이 없자 결국 해사한 웃음으로 돌아온다. 결국 네가 원한 대로 되는구나. 오이카와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깨어나니 눈가가 이마가 축축했다. 통제할 수 없이 몸이 떨렸다. 우시지마가 제 입을 틀어막자 버릇처럼 등 뒤에서 그를 끌어안는 팔이 느껴졌다. 오이카와가 우시지마의 등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래서 우시지마의 추락이 돌연 멎었다.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손을 겹쳐 쥐었다.
“나쁜 꿈은 잊어버려.”
우시지마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주문처럼 다정하게 속삭인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어깨에 입술을 누르다가 위로의 언어를 자아낸다. 당부하듯 아주 신중하게.
“우시지마, 우린 우주를 무사히 건너 달로 이주했어. 함선은 예정보다 이르게 도착했고, 우린 우리만의 아지트를 세웠어.”
“.........”
“여기엔 너와 나밖에 없어. 우리밖에 없는 세계야.”
그래서 우시지마는 그를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진짜 오이카와 토오루라고 믿기 시작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오이카와, 나의 토오루. 의심은 필요없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분별을 초월한 존재다. 광대한 우주에 우시지마가 사랑해마지않는 단 한 사람이 존재했다. 바로 여기에, 이 낭만적인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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